M-TV『그 여자』있음직한 이야기로"공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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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주위에서 있음직한 우리 주변 얘기를 다뤄 시청자들이 큰 긴장감 없이 편안한 기분으로 대할 수 있는 드라마 한편이 최근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다름 아닌 MBC-TV의 수목드라마『그 여자』.
평범한 일상 화제로 다양한 계층·연령·지역의 한계를 딛고 폭넓은 시청자를 확보, 연속극 분야에 새로운 성공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어 화제다.
등장 인물의 날카로운 심리 및 성격 묘사 등 전개 과정에서의 극적 요소에 치우쳐 온 기존의 안방 드라마와는 달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 타당한 삶을 포근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
서울 출신의 인텔리 여성이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집안 조건이 좋지 못한 남자와 만나 결혼해 무턱대고 참거나 그렇다고 좌충우돌식이 아닌 참을 것은 참아가며 천천히 주위 사람들과 조화를 이뤄간다는 게 이 드라마의 줄거리.
높은 관심을 그대로 보여주듯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만만찮다.
농사 짓는 사람들, 시골 출신 장남, 당시 사회 여건상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50대의 동대문 시장 상인 등이 말못할 아픔을 간직한 자신들의 얘기라며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달라는 격려 전화가 많이 온다고 제작진은 전해준다.
더구나 평소 드라마를 외면해 온 것으로 알려진 국내 식자층이 보여준 뜻밖의 열기는 제작자들조차 의외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현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바깥 생활이 복잡한 판에 TV 드라마에서까지 심리적 갈등 묘사로 일관, 그 동안 뉴스·스포츠중계·주말 영화 등만을 시청해오다 이 프로가 내용이 좋아 요즘 꾸준히 보고 있다』는 30대 현직 판사의 말은 이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과 결코 무관치 않다는 게 제작팀의 자체 진단이기도 하다.
『기존 드라마는 서구화에 따른 등장 인물의 사고 방식이 이기주의·개인주의와 출세·권력 지향적이었죠. 그러나 이것들은 본래 순박하고 남과의 융화를 통해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려는 우리네 본바탕 심성과는 거리가 있었던거죠. 그러기에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이 같은 안도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배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통상 건전성을 내세운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호응이 없어 대부분 실패로 끝난 것에 비해 큰 성과를 올린 이 프로의 연출자 박철씨(52)는 한국 고유의 색깔이 들어간 바람직한 드라마 상을 제시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있다.
도시 여자가 사생활이 없다시피 한 시골의 농경 문화 속에서 겪는 갈등을 표현한 여류 작가 박진숙씨(43)는 남아 선호 사상과 장남의존 등 우리 사회에 뿌리 박혀 있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자는 데 이 드라마의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 같은 풍의 연속극으로 10여 년간 방송되고 있는『전원일기』등이 있긴 하나 지금의 사회 풍조를 그대로 반영한 드라마는 지난1월 MBC 미니시리즈로 방송된『마당 깊은 집』이 있고, 연속극에서는 이번이 본격적인 시도로 평가되며 앞으로 제작되는 드라마들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방송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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