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폐기물(환경오염 위험수위: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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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산ㆍ하천 곳곳에 「죽음의 쓰레기」/화공약품ㆍ중금속 불법폐기 일쑤/체내 축적되면 치명적 질병
「죽음의 쓰레기」로 불리는 산업폐기물이 하천ㆍ야산ㆍ바다 등에 무분별하게 버려지고 있어 국토가 병들어 가고 있다.
특히 납ㆍ카드뮴ㆍ크롬ㆍ수은 등 중금속이 함유된 유해 산업폐기물이 적정처리과정을 거치지 않고 불법매립되거나 방치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 때문에 주변 생태계 파괴는 물론 침출수로 인해 지하수까지 오염시켜 암유발ㆍ위장ㆍ폐 등 인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고 환경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처리수준이 원시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처리장소 마저 절대 부족한데다 일부지방에서는 유해 산업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공해저항을 불러 일으키고 있으나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한번 버린 유해 산업폐기물(중금속)은 영원히 부패하지 않고 땅속에 남아 오랫동안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 88년 5월 경기도 부천시의 아연도금 공장에서 일하던 고상국씨(당시 47세)가 온몸의 뼈가 일그러지거나 금이 가 기침만해도 갈비뼈가 부러진다는 카드뮴 중독증인 「이타이 이타이 병」 증세를 보이다 숨진 사고가 발생,중금속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고씨의 경우은 비록 중금속을 다루는 현장에서 직접 발생한 예지만 카드뮴등이 함유된 산업폐기물에 의해 오염된 지하수를 장기간에 걸쳐 마실 경우 중금속이 체내에 축적돼 결국 고씨와 같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의학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생존권 마저 위협
문해란 녹십자임상병리센터원장은 『카드뮴등 중금속에 오염됐을 경우 일단 혈액에 녹아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장등 장기에 농축돼 중독증세를 일으킨다』고 밝혔다.
이처럼 인체에 큰 피해를 주는 유해 산업폐기물을 배출업소나 처리업체등에서 논ㆍ밭ㆍ도로변에까지 마구잡이로 버리고 있어 생존권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배출업체의 청탁을 받고 반액체 상태의 공업용 카바이드를 대량으로 트럭에 싣고 달리면서 서울∼충주∼상주를 잇는 국도상에 몰래 버린 트럭운전사와 업주가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해 11월에는 배출업체와 무허가 처리업체가 짜고 부산시민의 식수원인 물금취수장 위쪽에 폐합성수지,각종 화공약품 찌꺼기등 유해 산업폐기물 수천부대를 야적하거나 매립해 심한 악취를 풍기고 비가 올 때마다 화공약품이 하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을 인근 주민들이 부산환경청에 신고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지난 5월 황산가리ㆍ폐산ㆍ과인산석회ㆍ폐유 등 인체및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유해 산업폐기물을 바다나 야산등에 몰래 버린 20개 공해배출업체와 폐기물처리업체가 무더기로 환경처에 적발됐다.
현행법상 공장에서 배출되는 산업폐기물은 종류에 따라 분류,수거한 뒤 무해한 일반산업 쓰레기는 재생하거나 소각 또는 매립하고 폐산ㆍ폐알칼리ㆍ중금속 등이 함유된 유해 산업폐기물은 열처리나 화학처리등을 거쳐 엄격하게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배출업체에서 경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자가시설을 갖추지 않고 위탁처리업체에 그대로 맡기고 있다.
배출업체가 허가업체에 일반 산업폐기물을 위탁처리할 경우 비용은 t당 2만∼3만원,유해 산업폐기물은 t당 20만∼30만원선.
반면 무허가처리업체는 수송비 정도만 주고도 폐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무허가 처리업체와 짜고 불법으로 내다버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매립지마저 크게 부족,연평균 20%이상 늘어나는 산업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불법처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산업폐기물 배출업소는 9천여개. 이 가운데 자가매립지를 확보하고 있는 곳은 0.3%인 27개소에 그치고 나머지는 모두 처리업체에 맡기고 있다.
폐기물처리업체도 매립지가 부족하긴 마찬가지. 42개 허가업체중 매립지를 갖고 있는 업체는 27개소. 나머지 업체는 시ㆍ군 매립지를 이용하거나 다른 업체의 매립지를 사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환경처집계에 따르면 산업폐기물 매립지확보 현황은 배출업체의 자가매립지가 약 1백66만평이고 처리업체는 약 13만5천평의 자가매립지를 갖고 있으나 그나마 15개월후면 포화상태에 이른다는 것이다.
○버릴 곳도 없다.
또 당국이 관리하는 전국 쓰레기 매립장 3백25만평중 산업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는 곳은 고작 5천4백54평에 불과하다.
매립지가 이같이 절대 부족하자 하루 평균 5만6천t가량 쏟아지는 산업폐기물이 갈 곳이 없어 아무데나 불법으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루평균 약 2천5백t이 배출되고 있는 유해 산업폐기물의 경우는 큰 문제다. 유해 산업폐기물은 환경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온산ㆍ화성에만 매립하도록 되어 있으나 하루 처리능력이 온산 1백t,화성 60t 등 1백60t밖에 안돼 나머지는 어디에다 갖다버리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폐기물처리업체인 경기도 안산의 M사측은 『매립지가 모자라 산업폐기물을 치울 데가 없다』며 『설사 매립지를 확보하더라도 인근 주민들의 「공해저항」에 부닥쳐 사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까지 매립지를 확보해 놓고도 지역주민의 반대로 건설사업이 중단된 곳은 경남 양산등 전국 11개 지역 15만3천8백여평에 이르고 있다.
매립지 인근주민들은 폐기물에서 나오는 침출수로 인한 농경지 오염과 수질오염등을 우려,매립지 사용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폐기물이 이처럼 갈 곳이 없자 공해배출업체 및 처리업체에서는 폐유ㆍ폐산ㆍ폐알칼리 등 유해 산업폐기물을 일반산업폐기물과 섞어 위장,또는 폐기물 차량표지를 하지 않고 난지도등에 버리거나 야간을 이용해 하천이나 야산에 몰래 버리고 있다.
이 때문에 유해 산업폐기물을 버릴 수 없는 난지도나 경기도 시화 쓰레기매립장등은 유해 산업폐기물이 곳곳에 널려있어 주변오염이 심각하다.
난지도의 경우 하루평균 3만8천5백70t 8t 트럭으로 4천8백10대분의 각종 쓰레기가 버려지고 있으나 이중 유해 산업폐기물이 얼마나 들어오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리사무소측은 『하루에 들어오는 차량이 워낙 많아 일일이 검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그중 일부분은 유해산업 폐기물을 일반쓰레기로 위장해 들여오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놨다.
구자공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난지도는 매립지가 주변지역에 그대로 노출돼 있고 사질토 위에 그냥 내다버려 비가 올 때 침출수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 주변지역은 물론 한강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화 쓰레기매립장도 산업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들이 매일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리며 폐유덩이,시커먼 철가루,화공약품찌꺼기 등을 쏟아붓고 있다.
이들 유해 폐기물을 쏟아붓는 차량들은 하나같이 일반청소차량으로 위장하거나 주위의 눈을 피하려 겉에는 일반쓰레기를 얹고 속에는 유해 폐기물을 넣어버리고 있다.
최근 내린 장마비 때문에 매립장 주변은 폐기물 더미에서 흘러내린 시커먼 침출수로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매립장의 한 경비원은 『지난 3월부터 일반산업쓰레기 반입을 허용하면서 온갖 폐기물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특히 인근 반월공단에서 나오는 화학약품 찌꺼기 때문에 악취가 많이 나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 모두 마스크
시화 매립장 인근에 사는 주민 김모씨(45)는 『바람이 마주 불 때는 숨쉬기도 곤란할 정도의 악취가 나 다섯식구 전부가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고 대책을 호소했다.
김정욱 서울대교수는 『유해 폐기물에 의해 지하수등이 오염,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에게 돌아올 경우 그 피해는 더 커진다』고 했다.
유해 산업폐기물이 인간에 끼친 피해는 지난 78년 미국 나이애가라 부근의 공업지역인 러브캐널에서 일어난 사건이 대표적인 예.
46년초 화학공장등에서 나오는 유해 산업폐기물을 버리는 장소로 사용되던 곳에 들어선 러브캐널이란 마을에서 73∼78년 사이에 출생한 16명의 어린이중 9명이 정신박약,심장ㆍ신장질환,간질 등 선천성 질환을 갖고 있었으며 이 지역 여자들의 유산율도 다른 곳의 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8년 봄 폭우로 인해 땅속에 묻혀있던 폐유등이 흘러나오면서 유해사업 폐기물이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미국정부는 주민들이 이주시키고 이 마을을 폐쇄,「죽음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유해 산업폐기물에 의한 피해는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로 다가서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유해 산업폐기물의 불법매립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매립지 확보가 우선과제』라고 말하고 『대부분의 처리업체가 영세하기 때문에 단속 때마다 적발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으므로 처리업체의 시설기준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폐기물 처리업체인 경기도 안산의 명진개발 김건이사는 『국내 처리업체는 일반쓰레기에서부터 유해 산업폐기물까지 종합처리하고 있어 전문업체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처리업체의 전문화를 강조했다.<정재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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