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의 '북핵 삼국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과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 나서줄 것을 콘돌리자 라이스(사진) 미 국무장관이 촉구하고 나섰다. 두 나라가 대북 제재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이행을 논의하기 위해 18일부터 일본.한국.중국 순방에 나서는 라이스 장관은 15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마침내 북한의 방향 선회를 위해 엄청난(enormous) 압박을 가할 연합 세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안보리 결의에 대북 사치품 금수 조치가 포함된 것에 대해 라이스 장관은 "북한 정권은 국민이 굶주리는데도 사치품을 아주 좋아하는 정권이라 이번 결의에 큰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6자회담의 틀로 푼다는 입장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화를 끝내 거부한 북한이 핵실험까지 강행한 만큼 앞으로는 압박과 채찍을 자주 쓰겠다는 방침이다.

안보리 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된 데 대해 라이스 장관은 "북한이 완전히 고립됐다는 분명한 신호"라며 "이번 제재로 북한이 얼마나 큰 타격(blow)을 입을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번 제재로 모든 나라가 (북한에 대해) 단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존 볼턴 유엔 주재 미 대사도 ABC와 NBC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북한의 핵실험 발표는 중국에 대한 공개적인 모욕"이라며 "중국의 대북 지원 중단이 북한 설득에 아주 중요하지만 중국은 이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볼턴 대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결코 군사적 대안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금강산 관광 재고 요구할 듯=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그가 방한 중 한국 정부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재고를 촉구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요구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북한 대외교역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가운데 북한이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으로 버는 달러화가 북한 지도부로 흘러들어간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국이 이 사업을 중단하면 북한이 느낄 고통은 적지 않다는 게 미국 판단이다. 또 미 국방부는 간첩선 추적 등 대북 해상 차단 경험이 많은 한국군이 PSI에 참여하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둘 것으로 믿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의 역할을 바라는 더 큰 이유는 중국을 움직이는 키가 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일본과 일치된 대북 압박을 가하면 중국은 고립된 처지가 되고, 이에 부담을 느껴 압박에 동참하리란 계산이다. 그러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해 생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되리란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한국의 기여를 평가해 회담에서 한국에 더 많은 발언권을 부여할 것이라고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전망했다.

◆ 중국엔 기대 반 불신 반=중국에 대해서는 북한 선박에 대한 해상 검문과 금융거래 차단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주문할 것으로 관측된다. 라이스 장관은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거래 차단에 협력을 다짐하는 안보리 결의에 서명했다"며 "안보리 결의는 유엔헌장 7장에 따른 것으로, 중국이 책무를 다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회담에 복귀시킬 능력이 있다고 본다. 중국은 북한의 연명에 절대적인 에너지와 식량을 대량 지원하고 있다. 북한 대외교역의 절반 이상이 중국과의 무역이다. 미국이 북한 압박에 가장 큰 효과를 봤다고 자평하는 금융제재도 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결정적 타격을 입히기 힘들다. 라이스 장관이 강한 톤으로 중국에 대북 제재 동참을 주문한 이유다.

◆ 한국.중국 대응은=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수용할지는 불분명하다. 한국 정부는 이미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이 안보리 결의상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PSI 참여도 꺼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안보리의 제재 결의 시점에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회담하고 대북 공동 대응 기조를 확인한 점도 한.미 간에 틈이 벌어질 우려를 낳고 있다. 라이스 장관의 방한에 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북핵 위기 해결은 물론 변환기의 한.미동맹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이 얼마나 협조할지에 대해 자신 없어 하는 분위기다. 한 동북아담당 관리는 "중국은 동북아의 현상 유지를 바란다"며 "김정일 정권의 붕괴로 주민들의 대규모 월경 사태가 일어나는 건 중국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같은 다자 트랙에서는 최소한으로 협조하되, 북한과의 양자 트랙에선 체제 보장과 비밀 지원을 약속하는 등 이중 플레이로 미국의 압박을 피해 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