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국회 “개점휴업”/문공위사태 이후 쟁점법안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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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 “거여 힘 보이겠다” 전의 다져/야 「폭력암초」 있지만 실력저지
임시국회의 종반운영이 김영진의원(평민)의 폭력행위와 김대중 평민당총재의 지자제 관철 천명,그리고 민자당의 8개 법안 강행처리방침이 맞물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상위일정이 12일까지로 돼있고 16일이면 본회의까지 끝나게돼 추경안등 법안처리여부가 결정될 시점이나 중요쟁점법안은 10일 현재 심의는 물론 상정조차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여야는 대책회의를 열면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경호권발동및 몸싸움준비조 편성(여측) 실력저지조 편성(야측)을 하는등 일전불사의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민자당은 최재욱의원이 폭행을 당한 이후 매우 강경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9일 의총에서는 신중론을 개진하던 황낙주의원이 동료의원들의 야유로 중간에 하단했을 정도다.
사실 민자당내 상당수 의원들,특히 민정계 의원들은 합당이후 법안 하나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거여의 현실에 무력증과 불만을 삭이지 못해 당지도부에 대한 불신감이 폭발일보전에 와 있었다.
더구나 서울시 예산전용 문제와 관련해 정부ㆍ여당이 평민측 주장에 백기를 든 이후 이러한 무력감은 더욱 확산돼 왔다.
김영삼대표최고위원등 지도부가 이번 회기중에 추경안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관련법 △국군조직법 △대북 정책관련 3개 법안(남북교류특별법ㆍ남북협력기금법ㆍ통일정책연구원법) △방송구조개편관련법(방송법ㆍ한국방송공사법ㆍ방송광고공사법) 등의 8개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 수뇌부는 이 법안들을 이번 회기내에 처리 못할 경우 4당체제보다 더 비능률적임을 증명해 주는 꼴이 되고 결과적으로 합당의 정당성이 허물어지게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바로 김대중총재와 평민당이 노리고 있는 목표와도 일치한다.
○…민자당은 김 평민총재의 기자회견으로 여야타협에 의한 법안의 합의처리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고 판단,일방강행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당직자들은 회견내용을 전해들은 뒤 일제히 『거여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말해 전의를 가다듬었으나 일방강행이 몰고올 정국경색과 여론동향에 큰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서정화수석부총무는 이런 사태를 예고라도 하듯 9일 의원총회에서 『밤이건 낮이건 1시간이내에 의사당내에 모일 수 있도록 비상대기해 달라』고 전달했는데 이것은 자체내 준비태세뿐만 아니라 평민당측에 대한 양동전략의 성격. 그러니 만자당은 일방강행의 경우 거여의 횡포라는 비난은 물론,향후 정국운영의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 틀림없어 고심하고 있다.
9일 의총에서 황낙주ㆍ신상우의원 등이 김영진의원에 대한 제명결의에 반대한 것도 이런 불투명한 전망때문이다.
따라서 민자당은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 당 3역회의와 막후 대화를 가동해 정당추천제 보장에 의한 광역지방의회 구성을 평민측에 은밀히 타진하는등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평민측의 반응이 냉담했다는 후문.
이 막후대회의 진전여하에 따라서는 김영진의원에 대한 징계를 공개사과 정도로 절충할 가능성도 있다.
○…이번 임시국회 전반을 쾌속 항진해온 평민당은 김영진의원의 징계문제라는 암초에 걸려 역풍을 맞고 있으나 기존방침에 따라 갈 데까지 간다는 강경대응책을 고수.
김대중총재가 9일 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평민당은 추경안을 지자제에 연계시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민자당의 부도덕성을 부각시키는 데 이번 임시국회 후반을 최대한 이용해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혀 예기치 않게 문공위의 폭력사태가 발생,악재로 작용함으로써 평민당의 이같은 전략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빠졌다.
영등포 롯데상가 특혜분양 시비를 지난 대통령선거에서의 예산전용추궁,총리의 시인사과 등으로 역전시키며 모처럼 승기를 잡는가 했더니 다시 주저앉게 됐다고 수뇌부가 한탄할 정도다.
당 최고위 지도부가 『우리 당은 무엇이 좀 되려 하면 마가 낀다』고 했던 푸념에서 김의원의 폭력사건으로 평민당이 얼마나 낭패스러워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평민당은 사실 지자제를 제외하면 국군조직법ㆍ방송관계법ㆍ광주관련법 등의 이번 국회통과를 실력저지한다는 방어적인 자세밖에 취할 수 없었다.
다소의 무리가 없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서도 지자제를 부각하려했던 이유는 바로 저지일변도의 몸짓에서 올지로 모를 약간의 점잖지 못한 모습을 희석,또는 정당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10일 긴급의원총회등에서 민자당측의 김의원 징계요구에 맞서 이민섭문공위원장(민자)의 맞징계를 강력히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기세를 꺾이지 않겠다는 몸부림. 그러나 김의원사건의 장기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김의원의 행위자체를 두둔할 생각이 없다는 김영배총무의 거듭된 언명,그리고 김총재의 공개사과등은 조기진화를 바라는 평민당의 고심을 반영하는 것이다.<이재학ㆍ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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