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촬영 끝낸 강우석 감독 "흥행은 자신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올 겨울은 제작비 1백억원대의 한국영화 대작 두 편이 극장가를 달구게 될 것 같다. 강우석(43) 감독의 '실미도'가 12월 24일 개봉하고 3주 뒤인 1월 16일 '쉬리'의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로 관객과 만난다.

각각 1백억원과 1백40억원이 들어가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데다 충무로에서 두 감독이 차지하는 무게 때문에 두 영화의 성패가 한국영화의 판도를 바꾸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7개월에 걸친 촬영을 이달 초 모두 끝내고 편집.녹음 등 마무리에 여념이 없는 강우석 감독을 24일 오후에 만났다. 그는 "내 영화 '실미도'가 먼저 불을 지피면 '태극기 휘날리며'가 여세를 받아 올 겨울 큰 일을 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특히 '실미도'에 대해 "여태까지 내가 찍은 영화 중에 가장 흥행 느낌이 좋다"며 엄지를 불끈 세웠다.

'투캅스' '공공의 적' 등 화제작을 잇따라 내놓았고 제작과 극장 사업 등에도 관여해 온 그는 한국영화계의 1인자라 할 수 있다. 상황이 불리할 때도 주눅 드는 법이 없는 그는 늘 자신만만하고 호언을 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눈빛에서부터 확신에 차 있었다.


왼쪽부터 설경구·안성기·허준호.

"허풍이 아니다. 얼마 전 가까운 인사 40명에게 영화를 보여줬다. 반응은 한결같이 좋다는 거였다. 남자들은 액션이 많은 전반 50분에 후한 점수를 줬고 여성 취향의 사람들은 드라마가 강한 후반 1시간 20분이 뛰어나다고 했다."

영화 '실미도'는 실미도 부대가 일으킨 실제 사건을 다룬다. 실미도 부대는 1968년 김일성 주석궁을 습격할 목적으로 창설된 특수부대. 그러나 가혹한 훈련과 열악한 처우에 견디다 못한 부대원들이 71년 8월 청와대로 진격하다 진압 병력에 막히자 서울 대방동에서 수류탄으로 전원 자폭해 버린다. 군사정권 아래서 오랫동안 묻혀져 있던 이 사건은 93년 처음 전모가 드러났다. 강감독은 이날도 이름없이 죽어간 부대원들을 위해 실미도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느 쪽의 잘잘못을 떠나 왜 이 같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전국 3백만명이 들면 손해는 안 보는데 이 정도는 충분히 자신 있다. 해외반응도 좋다. 1백억원짜리 영화라고 다들 걱정하는데 난 걱정 안 한다. 흥행보다 좋은 영화 만들었다는 소리 듣고 싶다."

강감독은 지난 해 초'공공의 적'으로 3년 반 만에 감독에 복귀했다. 연출 외적인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진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감독으로서 더 숙성됐다는 평을 들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항상 감독으로 돌아간다고 다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영화 만드는 게 무서워지고 관객을 두려워하게 됐다. 그래서 한 컷 한 컷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런 책임감만으로는 급성장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독서를 비결로 꼽았다.

"하루 한 권 이상씩 책을 읽었다. 감독 생활을 통틀어 읽은 것보다 더 많은 책을 현장을 떠나 있던 3년간 읽은 것 같다. 얼마 전 부산영화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있었더니 옆에 앉은 영화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보더라. 내 영화와 '사기'가 잘 연결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런 마인드는 곤란하다. 모든 스토리는 풍부한 독서에서 나오고 책을 많이 읽어두면 시험장에서 아무 두려움이 없는 수험생 같아진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감독들을 질타했다.

"너무 나태하다. 30대 젊은 나이에 3, 4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는다는 건 문제다. 그 나이 때는 공장처럼 영화를 찍어내야 한다. 자꾸 만들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내 나이가 되면 자기 영화가 나온다. 감독이 1년 이상 놀고 있으면 안 된다. 캐스팅이 안 되네, 시나리오가 없네 하는 건 다 핑계다. 24시간 영화만 생각하면 될 텐데 다들 강의를 합네 뭘 합네 하면서 다른 일에 너무 번잡한 것 같다. 요즘 영화를 보면 재미는 있는데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 많다. 그건 다 독서 부족 탓이다."

'실미도'를 찍으며 그는 또 한번 성장한 느낌을 갖게 됐다고 했다.

"문자로 옮겨진 건 무조건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시나리오 볼 때는 할리우드도 아니고 이런 걸 어떻게 찍나 하는 게 많았다. 예컨대 보트를 몰고 가면서 밤바다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것 같은 장면이다. 그런데 한번 부딪쳐 보자고 마음 먹었더니 되더라. 할리우드 잠수함 영화를 찍었던 말타의 한 스튜디오에서 수중 장면을 찍었다. 설경구는 하마터면 물에 빠져 죽을 뻔하기도 했다. 파도가 계속 쳐 물을 연거푸 마시고 있었는데도 내가 '컷'을 늦게 불렀기 때문이다. 영화 다 보고 나면 저걸 어떻게 찍었나 싶은 장면들이 많을 거다. 배우들 고생 많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

'정말 힘들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도 그는 '여자들이 애 하나 낳고 다시는 안 낳겠다고 하고도 다시 낳게 되듯이 영화 만들기를 그만 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를 할 때는 술을 마셔도 머리가 아프고 뒤끝이 좋지 않았는데 촬영을 끝낸 뒤에 마시는 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고 잠을 못 자도 졸립지 않았다. 영화만 생각하게 되니 힘들어도 보람되고 행복해서 그런 것이다."

내년엔 '공공의 적 2'를 찍고 윤봉길 의사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 생각이다.

"이제 경영에선 완전히 손 뗐다. 감독으로 인생을 마칠 각오가 섰다."

글=이영기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