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 통과의 교훈/김현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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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3월 임시국회때 국방위에서 위원장이 손바닥을 쳐 날치기 통과시켜 법사위에 넘겨졌던 국군조직법 개정안이 5일 국방위로 되돌아왔다.
여야 각기 그 적법성과 회송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있지만 한번 통과시킨 것을 다시 심의하는 것은 의정사상 극히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사례임이 틀림없다.
평민당은 당시 위원장이 의사진행발언 요구를 무시한 채 표결을 선언,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들겨 통과시킨 것이 절차상 잘못이었으므로 이번에 회송한 것이 원상회복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민자당은 합법적으로 통과된 법안이긴 하지만 일부 내용을 수정ㆍ보완키 위한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당측의 변명은 금세 수정ㆍ보완할 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가 야당측의 결사저지 당론과 여론의 세찬 저항앞에 굴복한 것을 궁색하게 합리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번복하는 과정에서 어차피 통과시키려면 큰 격돌을 겪어야 할텐데 무엇때문에 국방위로 다시 법안을 가져와 한판 싸움을 두판으로 만드느냐는 압력이 당내외로부터 있었다.
그럼에도 이미 저질러진 절차상의 잘못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관례를 축적하고 국가방위의 기본법이 최소한 날치기라는 이름으로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과거에도 정치성이 전혀 없는 의안중 입법절차상 잘못이 발견되어 본회의에 올라온 법이 상임위로 되돌아간 사례는 한두건 있었다. 그러나 보안법등 여당이 수를 앞세워 작심하고 날치기 통과시킨 법안이 재심의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자존심을 삭여가며 뒤늦게나마 잘못을 반성한 여당의 자세가 이번 국군조직법 회송으로 뿌리를 내린다면 이번의 「창피」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3당통합후 거여의 횡포와 오만이라는 여론의 비난속에 「횡재」를 한 평민당도 한번쯤 자성해볼 점이 없지않은 것 같다.
사실 지난번의 날치기 파동은 야당의 정책개발 미흡과 대응논리의 취약점 때문에 정상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부분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계전문가들이 공들여 만든 법을 5성 장군의 군권장악과 쿠데타 가능성이라는 슬로건 하나로 저지하겠다는 논리를 좀더 정교하고 차원높은 대안으로 승화시키려는 야당의 진지한 고민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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