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9시 30분 울산시 전하동 현대중공업. 최길선 사장과 황무수 조선본부장이 10km 떨어진 해양 구조물 공장과 조선 부문 공장에 일부 임원들과 제각각 모였다. 오전 10시에 이 두 곳에서 배 두 척의 명명식이 동시에 열리는 바람에 관련 최고경영진이 한자리에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5만평 규모의 해양 플랜트 공장에선 바다 밑에서 원유를 끌어올려 정제한 뒤 저장하는 원유 시추 해양 설비(FPSO)에 '그레이터 플루토니오'라는 이름을 붙였다. 길이 310m, 높이 32m의 이 거대 설비는 아프리카 앙골라 인근 해역 수심 1300m 해상에서 하루 2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이 2004년 1월 영국 BP사에서 3억4000만 달러에 수주해 11일 울산에서 명명식을 한 원유 생산.저장 해양 설비(FPSO) ‘그레이터 플루토니오’호.
조선 공장에선 벨기에 사프마린사가 주문한 4150 TEU급(20피트 컨테이너 4150개를 싣는 크기) 컨테이너선을 '사프마린 메루'로 명명했다. 이튿날인 12일에도 각각 10만t이 넘는 대형 선박의 '생일 잔치'가 두 건 열렸다. 이 회사 김종도 이사는 " 평소엔 한 주에 1.5척 꼴로 배를 지었는데 추석 연휴로 명명식 일정이 밀리는 바람에 이틀새 네 척의 배를 한꺼번에 내보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는 국내 조선업계, 그 중에서도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중공업은 세계 각지의 주문을 소화해 내느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배와 해양설비만 만드는 게 아니라 선박 엔진과 육상 플랜트, 건설 중장비 등을 아울러 만들어내 더 그렇다. 엔진 부문은 올해 총 1000만 마력 상당의 제품을 생산해 단일 공장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150만 평 면적에 해안선 길이만 15㎞에 달하는 이 회사 울산 사업장은 각종 원자재와 기자재로 꽉 차 웬만큼 널찍한 공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 조선소 내 도크와 작업장에서 제작 중인 배는 67척에 이른다.
주력인 조선과 해양 플랜트는 해마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4년 106억8000만 달러 어치의 선박과 플랜트를 수주해 세계 최초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122억5000만 달러, 올 들어 지금까지 114억7000만 달러어치를 수주해 3년 연속 1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생산량도 2002년 49척, 2004년 64척에서 올해 74척으로 급증했다. 세계 원유 관련 해양 설비 시장 점유율이 13%로 1위다.
아무리 주문이 밀려들어도 사업장의 생산성이 따라 주지 못하면 감당하기 힘든 노릇. 현대중공업은 2004년 6월 세계 처음으로 땅 위에서 배를 만드는 육상건조공법을 도입했다. 10만5000t에 달하는 대형 선박 10척을 이 방식으로 지었다. 최근엔 평균 85일 걸리던 이 공법의 선체 제작 기간을 해안 도크 제작기간과 같은 55일로 훨씬 단축했다. 김 이사는 " 다양한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노력으로 중국 업계의 추격을 따돌리겠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