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이해 따져30년간 조금씩 개방|일·대만을 통해 본「자본 자유화」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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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자본시장의 대외개방이 미치는 영향은 워낙 광범위해 어떤 나라 건 자본자유화 시기와 방법을 선택함에 있어 대단히 신중한 자세로 임해왔다. 일본과 대만을 중심으로 자본자유화과정과 투자상황을 살펴보고 우리의 여건은 어떠한지를 알아본다.

<일본>일본의 자유화조치는 지난50년 외자법 제정에서 비롯, 수많은 단계를 밟아가면서30여 년에 걸쳐 이뤄졌다.
국민경제의 발전단계에 맞춰 철저히 자국중심으로 개방의 폭과 시기를 조정, 자본자유화로 인한 최대의 경제적 효과를 끌어낸 것이 자본자유화의 일관된 흐름이었고 그 결과 지금은 세계 제일의 금융대국으로까지 부상했다.
일본의 자본시장개방은 50년 외자법 제정에서 비롯, 80년 말 신 외환법의 제정으로 원칙적으로 1백%개방되기까지30년에 걸쳐 이뤄졌다.
이 30년 동안 일본은「원칙적 금지, 예외적인가」라는 방침을 고수하면서 그때그때 대 내외의 여건을 고려, 자유화의 폭을 넓혀나갔다.
51년 시장을 통한 주식취득이 허용되고 52년 주식매각대금의 송금보증(대금취득 후 2년 거치 5년 분할) 조치가 취해지며 같은 해 외국투자가 전체 보유주식 비율이8%(18개 제한업종은 5%)이내에서는 투자를 자동인가 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무역수지는 50년대 후반부터, 경상수지는 60년대 후반부터 완전히 흑자기조를 굳혔고 이에 따라 68년 일본은 대외채권국으로 돌아섰지만 일본의 대내개방은 60년대에는 사실상 거의 진전되지 않았다.
60년대 초까지 송금제한이 풀렸고 67년부터 73년까지 일본은 5차에 걸쳐 투자자유화업종을 늘리고 증권투자의 자동인가한도를 확대시켜 나갔지만 국내산업의 발전단계를 고려하고 일본 스스로의 해외투자확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하는 매우 제한된 것이었다.
60년부터 70년대 말까지 외국투자가 1인의 증권투자자동인가한도는 5%이하에서 10%미만으로, 외국투자가 전체로는 제한업종에 있어 10%이하에서 15%이하로 늘었을 뿐이다.
반면 일본의 증권업계는 53년 노무라 증권이 뉴욕출장소를 개설한 이래 70년대 초까지 지점·현지법인등의 형대로 잇따라 진출했다.
메릴린치사의 일본지점이 처음 문을 연 72년에 일본은 외국에 10개의 지점과 18개의 현지법인을 두고있었다.
일본은 특히 정부와 업계의 자율조정으로 노무라 등 대형4개 사를 중심으로 해외진출에 나서 과당경쟁과 외국으로부터의 반발을 줄이는 등 세심한 배려를 했다.
자본자유화의 초기단계부터 철저히 대외진출을 우선으로 하고 이에 따른 상호주의압력을 완화키 위해 마지못해 문을 여는 방식으로 일관되어있다.
특히 각 산업에 대한 단계적인 개방과정에서 증권업만큼은 80년대 초반까지도 외국자본의 진출을 철저히 억제해왔다.
80년12월 신 외환법의 제정으로 원칙적으로 전 업종에 걸쳐 완전개방조치를 취했지만 행정지도 등의 방법으로 외국자본의 일본증권업진출은 철저히 통제됐다.
표면상으로 외국증권사의 일본진출은 외국증권업자에 관한 법률 및 동법 시행령, 대장성령 등에 의해 신청·허가를 받으면 되나 이 과정을 매우 까다롭게 운영함으로써 통제를 해왔다.
이에 따라 외국증권사들의 일본 내 지점설치가 활발해진 것은 85년 이후의 일이고 83년 동경증권거래소의 회원자격을 외국증권사에도 부여키로 했지만 실제 정회원으로의 가입은 86년에 와서야 이뤄졌다.
30년 이상에 걸쳐 치밀하게 추진된 일본의 자본자유화는 자국경제의 성장과정과 맞물려 개방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시키고 성장의 과실을 내부에 축적시키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있다.
증권업개방과 관련해 최종단계라 할 수 있는 동 증의 회원권개방이 80년대 중반이후 일본의 엔고와 막대한 국제수지흑자로 해외투자가 급팽창해 일본이 해외투자로 얻는 수익과 일본 내 외국증권사가 일본에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익이 비슷한 시점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일본의 정확한「계산」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장기간 치밀한 계산아래 자본자유화를 진행시켜온 일본도 89년 말 현재 동증 회원권을 가진 25개 외국증권사지점이 회원권획득후 불과 2∼3년만에 동증 전체거래량의 15%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일본이 30년 이상의 대외진출로 경험을 쌓았다지만 금융거래기법에서 본산격인 외국증권사의 노하우는 그만큼 막강하다.

<대만>대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외압」에 밀려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82년 3단계의 자본자유화계획을 발표한 후 88년1월 신 증권거래법을 공포, 외국증권사의 대만 내 지점설립과 대만증권사에 대한 외국인의 자본참여를 허용했다.
대만은 그동안 중국을 의식, 외환거래에 엄격한 통제를 가했으나 국제수지흑자의 누증에 따른 통화압력을 줄이고 대외의 개방압력을 피하기 위해 이 같은 자본자유화에 나섰다. 대만의 특징은 대내증권투자보다 대외증권투자 자유화가 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87년 개정된 외환 법은 49년 대만정부수립이후 시행돼온 외환 집중제를 폐지하고 연간 5백만 달러 범위내의 직·간접해외투자를 허용하고 있다.
외국인의 대만주식투자는 외국인전용 편드나 해외전환사채를 통한 간접투자만 허용된다.
이와 함께 외국증권사의 대만진출도 허용됐으나 그 내용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대만증권사에 대한 자본참여는 1사에 10%, 합계 40%를 상한으로 해 경영권 이전을 막았다. 현재 뱅커 스트러스트와 자딘플레밍 등 2개 사가 자본참여를 했고 일본의 4대 증권사가 자본참여를 신청하고 있는 상태다.
지점설치는 메릴린치와 시어슨레먼 등 2개 사가 신청중일뿐 아직 문을 연 지점은 없다.
대만은 지점설치의 요건으로 ▲총 자산 2백억 달러 이상 ▲순자산 20억 달러 이상 ▲뉴욕·동경·런던증권거래소의 회원권 보유 등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있는데 이 같은 신청요건을 갖춘 증권사는 일본의 4대 증권, 미국의 7대 증권에 불과하고 유럽계 증권회사는 전부 자격미달일 정도다.
결국 제도·법적으로는 외국증권사의 진출여건을 갖췄지만 요건과 자격을 까다롭게 해 개방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한국>
88년11월 발표된 자본시장 개방일정에 따라 정부는 91년 허용기로 한 외국증권사의 국내지점과 신규합작사 설립기준마련을 서두르는 등 일단 준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 개방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됐던 여건정비가 크게 미흡한 상태여서 과연 현시점에서 예정대로 개방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히 제기되고 있다.
무역 및 외환자유화는 상당부분 실행됐지만 금리자유화는 답보상태고 통화관리는 아직도 직접규제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금융산업개편문제는 관계기관마다 안이 달라 윤곽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또 금융실명제가 유보됨에 따라 이를 전제로 한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사실상 의미가 크게 퇴색했으며 자본자유화를 앞두고 거론됐던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는 검토대상에서조차 빠졌다.
이는 국제적인 단기투기자금(핫머니)의 출입을 효과적으로 통제·감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 보다 근본적 전제라고 할 수 있는 국제수지흑자구조 정착과 국내증시의 안정 성장은 올해 무역수지가 대폭 적자로 돌아섰고 증시는 그동안 누적된 수급불균형으로 발행이 제한되고 시장은 침체되는 어려운 국면이다.
국내증권산업도 자본시장개방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볼 수 없다.
결국 내부여건만으로 볼 때 현 상태에서의 자본시장 개방은 큰 혼란과 손실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대외적으로 공포한 개방 일정이 걸림돌이고 자본시장개방에 대한 외압이 더욱 거세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자본시장개방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시기와 방법을 조정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지적이 많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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