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가뭄 목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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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든 것도 아닌데 말라서 떨어지는 은행잎이 많다. 열매도 제대로 여물지 않은 채 쪼그라들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서 은행나무 농장을 운영하는 박찬석(72)씨는 "모두가 가물어서"라고 말했다.

경기도 과천 향교 옆 관악산 계곡은 바닥에 내려서면 먼지가 풀풀 날린다.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송기순(58.여)씨는 "20년 가까이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계곡이 이처럼 말라붙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경기.강원영서.충남 지역의 가을 가뭄이 심하다. 7월 여름 긴 장마와 폭우에 시달린 지 석 달도 안 돼 가뭄 걱정을 하게 된 것이다.

◆ 47일째 비다운 비 없는 서울=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은 7월에 평년의 세 배가 넘는 1014㎜의 비가 쏟아졌다. 반면 8월 27일 이후에는 비가 5㎜ 이상 내린 날이 없다. 9월 들어서는 이따금 찔끔찔끔 내린 비를 모두 합쳐봐야 평년치의 8.1%인 11.2㎜에 불과하다. 하지만 9월에 증발한 물은 110㎜나 된다. 땅이 바짝 마를 수밖에 없다. 인천.서산도 8~9월 강수량이 평년의 20%가 채 안 되고, 10월에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이에 따라 관악산.북한산 등 도시 근교 계곡과 일부 농촌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농작물.산불 피해 걱정=충남 서산.태안지역 농민들은 "물이 부족해 콩.들깨가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가 돼 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무.배추.파.당근 등 김장용 채소와 양념류가 한창 자랄 시기지만 토양이 말라 수확량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의 대청봉~한계령의 단풍 색깔도 곱지 않다. 나뭇잎이 오그라들고 부서지는가 하면 그나마 단풍이 든 나뭇잎도 검은 반점이 많이 생기고 있다. 충북 속리산국립공원의 천황봉과 문장대 부근도 잎이 누렇게 마르면서 타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수량 부족과 높은 낮기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산불이 날 가능성도 커졌다. 벌써 경북 구미와 충남 보령 등지에서는 12일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은 예년보다 한 달이 앞선 이달 초부터 산불 경계에 나서고 있다.

내주말에나 비 올 듯

◆ 비 언제 오나=기상청 기상통보관실 허은 과장은 "비를 몰고 다니는 온대 저기압이 우리나라를 북쪽과 남쪽으로 비켜가면서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음주 후반에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지만 강수량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용수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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