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인터넷, 너 없으면 하루종일 불안해 T_T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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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금단현상
이금이 지음, 김재홍 그림
푸른책들, 120쪽, 8500원, 초등 3~6학년

최근 나온 동화들을 보면서 10년, 20년 전과 견주어 볼 때 리얼리티가 대단하다는 감탄을 할 때가 많다. 하긴 영화나 게임, 판타지 소설에 돌아간 아이들의 눈길을 뺏어오려면 '현실밀착형'으로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법도 하다.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린 이 동화집도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지를 가감 없이 그린 매력적인 작품이다.

표제작인 '금단현상'은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자 심각한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소녀 효은이의 얘기다. 효은이는 짝사랑하던 현기가 이사가자 e-메일로 속마음을 고백한다. 어느 날 엄마는 효은이의 오빠가 시험을 망치자 인터넷 서비스를 정지시킨다. e-메일을 쓰지 못하게 된 효은이는 끙끙 앓던 중 현기의 전화가 걸려온 날부터 전화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전화의 주인공은 현기가 아니라 전혀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이었다. 짝사랑 상대와의 은밀한 전화에 나날이 빠져드는 소녀의 심리 묘사나 반전이 재미나다. 여러 '중독'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때 거들 만한 작품이다.

남자의 가사 거들기나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깨기 등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주고 싶다면 '십자수'를 권해보자. 선재네 집에서는 아빠가 설거지를 하고 아들이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로 십자수를 놓는다. 할머니는 "가장 대접을 이렇게 하면 안된다""사내 녀석이 수를 왜 놓느냐"고 화를 낸다. 당연히 며느리와는 갈등을 빚을 수밖에. 할머니가 역정을 내며 집으로 가버리자 선재네 부모는 부부싸움을 벌인다. 엉뚱하게도, 아빠가 십자수에 관심을 가지면서 갈등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이밖에 만날 수 없는 소녀를 그리며 스웨터를 짜는 할머니의 애틋한 사정을 담은 '꽃이 진 자리'나 남자아이들의 엎치락 뒤치락하는 귀여운 우정을 그린 '촌놈과 떡장수', 전혀 생각지 않았던 엉뚱한 아이가 나를 도와주는 비밀친구였다는 '나의 마니또'등이 실렸다. 작가는 서문에서 어느날 오랜만에 전화를 해온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끝내 친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경험에서 '금단현상'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힌다. 이처럼 다섯 편 모두 소소한 일상의 스케치지만 아이들의 성장통과 섬세한 감성을 파고든 문제의식은 가볍지 않다. 1984년 '새벗문학상'과 85년 '소년중앙문학상'에 동화가 당선돼 데뷔한 이금이씨는 그간'너도 하늘말나리야' '영구랑 흑구랑'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등을 발표한 중견작가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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