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 왕서방 사로잡을 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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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국 비즈니스 최전선 (원제: One Billion Customers)
제임스 맥그레거 지음, 정준희 옮김
황금나침반, 464쪽, 1만9500원

제목 때문에 단순히 '세계 최대의 시장 중국에서 사업하는 노하우'를 일러주겠거니 여길 수 있다. 그래서 비즈니스 종사자들 아니면 커버만 보고 외면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책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법하다. 책은 중국 비즈니스 현장의 '전투'와 거기 사용되는 전략.전술을 담은 일종의 병법서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중국과 중국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파고든 흥미로운 분석서이기 때문이다.

외교도 그렇지만 비즈니스 역시 서로의 수를 읽어내고자 하는 피 말리는 싸움이 되기 일쑤다. 저자는 "중국의 비즈니스 행동과 사고방식은 역사와 문화에 의해 암호화돼 있다"며 암호를 푸는 방법으로 중국인의 심리와 무의식의 세계를 공부하자고 제안한다. 1995년 불법복제와 지적재산권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측 대표였던 '철의 낭자' 샤린 바세프스키가 거둔 성공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200여 년 전인 1793년(영국왕 조지3세의 사절 조지 매커트니가 중국 북부 해안에 함대를 이끌고 침공했다)으로 거슬러올라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타고난 우월감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때문에 생겨났던 어쩔 수 없는 공포와 거부감. 이것이 오늘날 중국과 비즈니스를 할 때 유수의 대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의 정서적 배경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해결책은? "중국과 미국이 윈-윈 할 수 있는 차원에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굴지의 기업이라도 중국인의 생리를 모르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중국 최초의 투자은행 CICC를 합작설립한 모건 스탠리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지은이는 이를 서로 다른 비즈니스가 만나 빚은 '문화충돌'이자 중국 속담 식으로 하면 '동상이몽'이라고 표현한다. 먼저 문화충돌. 자신만만하고 솔직한 모건 스탠리 측의 태도는 우회적 표현과 겉치레일지언정 예의바른 태도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비위를 사사건건 건드렸다. 다음은 동상이몽. 중국은 CICC를 세계 각국에 지사를 둔 굴지의 투자은행으로 키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모건 스탠리는 중국의 경제 붐에 편승해 잇속을 챙기겠다는 속셈이었다.

중국과 중국인의 속내 들여다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밀수를 통해 가난한 소년에서 일약 거물 경제인으로 성장한 라이창싱의 '인맥 넓히기'는 흥미진진 그 자체다. 그는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었던 유력 관료의 아버지가 죽자 그의 고향으로 내려가 장례 준비를 돕는가 하면 나중에는 여자까지 소개해 결혼시켰고 그들이 아들을 낳았을 때는 집을 선사했다. 책은 공무원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뇌물 대신 해외 연수나 여행, 골프 등 레크리에이션 기회를 포함해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장기적으로 만들라"고 조언한다.

"중국을 찾는 외국인 비즈니스맨은 종종 지나친 선의와 믿음을 갖고 있다. 반면 인내심은 턱없이 부족하다""중국은 서구화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화되는 것" 등 마오쩌둥 어록을 본딴 '비즈니스 마오쩌둥 어록'과 각 챕터의 앞뒤에 딸린 '미리보기''다시보기'등 짭짤하게 건질 수 있는 내용들이 많다.

지은이 제임스 맥그레거는 월스트리트저널(WSJ) 베이징 지사장을 지냈고 WSJ의 모기업 다우존스 수석대표와 중국 미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외국인으로서 한 나라의 단 맛과 쓴 맛을 고루 맛보기에 손색 없는 경력을 지닌 셈이다. 여기에 톈안먼(天安門) 대학살 직후인 1990년 중국에 발을 디딘 그는 15년이 넘는 중국 생활 끝에 어느새 전통의상인 치파오가 어색치 않고 표준어 푸퉁화(普通語)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반 중국인'이 됐다.

이런 바탕에서 쓰여졌기에 책은 중국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전방위적으로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인의 시각으로, 미국과 중국 중심의 지형도 속에서 논의가 전개된다는 점만 유의한다면. 만만치 않은 분량이지만, 풍부한 예화와 언론인 저자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글쓰기 덕에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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