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사회정의연구 실천모임/권태준 창립준비위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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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변혁기 올바른 길잡이 되겠다”/「위기」도 극복하면 발전의 기회/건설적 대안 꾸준히 연구ㆍ제시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변혁기에 처한 한국사회가 추구해야할 새로운 이념방향과 사회상을 제시한다는 취지로 서울대 소장파교수 1백21명이 모여 창립한 「서울대 사회정의 연구실천모임」이 지식인의 연구를 통한 사회참여의 새 이정표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달 22일 창립대회와 함께 「한국사회진단」이라는 주제로 창립기념 토론회를 가져 사회 각분야에 실험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등 본격적 활동에 돌입한 이 모임의 창립준비위원장직을 맡아온 서울대 환경대학원 권태준교수(54ㆍ환경계획학)에게서 이 모임의 창립배경및 의의ㆍ향후 활동방안등에 관해 들어본다. 권교수는 지난 66년 서울대 법대 전임강사로 강단에 선이래 69년 행정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73년에는 새로 설립된 환경대학원의 교수직을 맡아 78∼84년 6년간 환경대학원장직을 역임한 도시개발 정책학자며 서울대 총장(61∼64년)과 외대 학장을 지냈던 권중휘씨(86)의 막내아들이다.
­한국사회에서의 지식인의 현실참여전통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대학교수등 지식인의 현실참여는 개인적으로 정부기관이나 정치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과 성명ㆍ시국선언등 1개의 이슈에 여러명이 모여 1회성 입장을 표명하는 것,개인적으로 대중언론매체를 통해 여러 영역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방법등 세가지로 크게 행해져 왔다.
이 세가지 방법이 전부 오늘의 현실에는 실효성이 없고 문제파악과 실천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비판적 견해에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연구실천모임」이다.
­그렇다면 이 모임은 「한국의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한국은 한마디로 「구조적 전환기」에 처해 있다. 소련ㆍ동구의 개방과 함께 우리의 국토분단상황에 대한 이념적 재평가의 필요성,국내외적으로 공인받고 있는 「성장」과 함께 제기되고 있는 「분배윤리」의 시급함ㆍ역사상 처음 체험하는 정치의 민주화등 엄청난 정신적ㆍ물질적 도전들에 대응해 체제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구조적 전환기」로 평가된 한국의 오늘에서 이 모임의 창립은 어떤 의미와 동기를 갖는가.
▲우리 사회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아무런 새로운 구조발상을 하고 있지 못하다. 「총체적 난국」등 위기의식만 팽배해 있을 뿐 새로운 도전의 정체에 대한 인식조차 널리 퍼져있지 않다.
한편에선 「위기」만 경고해 기존체제의 안정만 유지하려 하고 또다른 편에서는 참신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생경하기만한 체제에의 충격요법에만 골몰하고 있다.
연구실천모임은 일단 현 상황을 「위기」뿐만 아니라 「발전의 기회」로도 판단하는 지식인들이 모여 고유의 영역인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체제전환에 필요한 이념ㆍ사회상ㆍ정책등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런 의도라면 왜 서울대 교수들의 모임에 국한시키느냐는 의문도 제기되는데.
▲전국적인 사회실천운동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기능적 이유때문이다. 캠퍼스가 떨어져 있으면 정신적 연대는 가능해도 연구와 실천의 지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불어 대표적 국립대인 서울대에서 먼저 시도를 해야한다는 사회적 책임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향후 타대학에서 이런 모임이 생겨나면 서로 협력해 나갈 것이다.
­모임의 창립과정은.
▲3월초 교수회관에서 점심식사도중 사회학과 한상진교수가 『교육ㆍ연구와 함께 실천적인 일을 한번 해보자』고 제의,3월중순께 우리 두교수와 박세일(법대) 안경환(법대) 황경식(철학) 최일섭(사회복지) 손봉호(사회교육) 임지순(물리) 이기춘(가정대) 교수등 9명이 모여 모임의 성격과 추진과제등을 논의한 것이 시초였다.
그뒤 개별접촉으로 86명의 발기인 교수들이 5월12일 발기대회를 갖고 1백21명이 지난달 22일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앞으로 해나갈 구체적 사업은.
▲「사회정의의 이념과 현실」 「자본주의ㆍ사회주의ㆍ분단한국의 문제」 「과학기술과 현대문명」 「교육과 사회발전」등 4개의 주제영역별로 연구 실천분야를 나눠 학기중 매주 화요일 1개 주제씩 관련교수들이 모여 콜로키움(집담회)를 개최한다.
특히 2분과인 「자본주의ㆍ사회주의ㆍ분단한국의 문제」는 2학기말에 대규모 공개세미나를 열어 연구축적된 결과를 공표,첫 사회적 발언에 나설 예정이며 「교육과 사회발전」 분과도 같은 계획을 갖고 있다.
더불어 지난 창립대회 기념학술토론회에서 공동발표된 교수 40명의 나름대로의 「한국사회진단」 논문을 묶어 이번 방학중 책으로 출판,시민들과 내용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러한 세미나ㆍ출판 등과 함께 앞으로 주부ㆍ학생 등이 참여하는 자발적 시민단체가 많이 생길 것으로 판단,문제의 발굴과 과학적 분석 등에 「지적인 길잡이」가 되려하며 환경ㆍ공해ㆍ소비자운동분야가 그런 예인 것이다.
더불어 국가적인 「긴급현안」이 발생할 때는 임시총회를 열어 재적 3분의2 출석ㆍ출석 3분의2 찬성으로 「공식입장」을 결정,대사회발언에 나설 것이다.
­회원구성상의 특징과 참여의 열성도는 어느 정도인가.
▲50대이상 교수가 20명미만으로 30∼40대 소장파 교수들이 주축을 이룬다. 특히 이공계 교수들이 전체회원의 50%인 60여명에 달해 「이공계 교수는 사회참여를 기피한다」는 신화가 깨어져 나간 점이 특징이다.
­예산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교수개인당 1만원의 연회비를 납부,가능한 최소의 경비로 사업을 벌여나간다는 원칙이다.
­교수와 함께 대학의 양 주인인 학생,특히 학생운동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가.
▲정확치는 않지만 학생들의 이 모임에 대한 반응은 「개량주의적 접근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정도인 것 같다.
지금껏 대학의 문제는 곧 학생들의 문제로 인식되어 왔으나 연구실천모임은 학생문제는 대학문제의 일부분이며 나아가 사회문제의 부분이라는 인식으로 교육등 제반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제시로 학생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향후 이 모임의 바람직한 미래상은.
▲권위를 지닌 집단이라기 보다는 우리사회의 체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가려는 모든 시민계층의 지성적 길잡이가 돼나가는 것이다. 교수들의 전담분야인 연구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건설적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시,모든 계층이 지식을 퍼내갈 수 있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 되고자 한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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