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주도 '대장 3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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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부 3인방을 대동하고 지난달 함경남도 금야강발전소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왼쪽 방향으로 이명수 대장, 하나 건너 박재경 대장, 현철해 대장.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측근 가운데 핵실험 강행을 주도한 인물은 누굴까.

최후의 결정이야 김 위원장이 직접 내렸겠지만 군부 강경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김 위원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박재경 인민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이명수 총참모부 작전국장 등 군부의 '대장 3인방'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은 김 위원장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 자신보다 당 서열.군 계급이 더 높은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영춘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상 차수)을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성욱 고려대(북한학과) 교수는 "박재경과 현철해가 김 위원장을 좌우에서 수행하면서 군 강경파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체제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며 핵위기 국면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핵실험 강행에 이르기까지 대장 3인방을 비롯한 군 강경파가 분위기를 잡고, 김 위원장이 추인 절차를 밟았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박재경.현철해는 과거에 김 위원장의 군부 장악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요직에 발탁됐다.

현철해는 조카인 현성일(전 잠비아 주재 3등서기관)씨 부부가 1996년 한국으로 망명했음에도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을 만큼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박재경은 김 위원장의 군내 우상화 작업과 사상교육을 총괄한다. 2000년 9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김 위원장이 남측에 선물로 보낸 '칠보산 송이버섯' 보따리를 서울로 가져온 적이 있다. 이명수는 김 위원장의 군부대 방문을 주로 수행해 최측근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 외무성 라인을 압도하는 군부=북한의 권력역학 구도에서 군부의 파워는 절대적이라 할 만큼 막강해지고 있다. 올 5월 예정됐던 남북 철도 시험운행이 좌초된 것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무산된 것도 모두 군부 강경파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들은 "군사 요충지인 개성.금강산 지역을 남측에 개방하면서 얻은 게 무엇이냐"며 온건.협상파를 공격해 왔다. 지난해 9월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나올 때만 해도 온건.협상파에게도 발언권이 있었으나 미국의 금융제재가 본격화하면서 강경 노선으로 급선회했다고 한다.

더욱이 금융제재 때문에 김 위원장의 돈줄이 막히자 외무성 라인은 '대화정책 실패'를 추궁받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듯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차석대사로 사실상 주미 북한대사의 역할을 맡아 온 한성렬이 최근 갑작스럽게 본국으로 소환됐다. 최근 방북했던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은 "금융제재 이후 강경파의 입지가 크게 강화돼 북핵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눈과 귀를 군부가 장악했으며, 그 중심에 대장 3인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 가운데 외무성에선 강석주(67) 제1부상이 그나마 발언권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94년 제1차 북한 핵위기 이후 10년 넘게 핵 관련 협상을 다뤄 온 외교 브레인이다. 당시 북측의 수석대표로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켰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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