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실험 발표는 일종의 선전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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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실험 발표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선전포고'"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12일 북한의 핵실험 발표를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선전포고'라고 규정했다. 그는 "북한이 핵 보유국 지위를 얻게 되면 결과적으로 한반도 적화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전 보좌관은 노무현 정부 초기에 국방정책을 총괄했으며 최근 한.미 간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이양 문제와 관련해 "지금은 환수 시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왔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가 실제로 군사 제재를 하지 않더라도 '군사 제재를 할 수 있다'는 각오를 북한에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북한 핵실험 발표의 의미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선전포고로 봐야 한다."

-왜 선전포고인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남북 간의 군사적 균형은 붕괴된다. 북한은 핵무기를 배경으로 '전쟁이냐, 굴복이냐'며 일상적인 위협을 가할 것이다. 북한의 위세가 높아지면 한국 내에선 '궁극적으로 북한에 의해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지겠구나'하는 (패배)의식이 커진다. 친북 세력이 확대되고 행동도 극렬해지면서 여러 가지 간접 침략전술이 동원될 것이다. 차라리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한.미 동맹으로 억제할 수 있으나, 이런 형태의 동족 간 간접 침략은 미국이 막아줄 방법이 없다.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와 적화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 된다. 그래서 장기적인 면에서 선전포고라는 것이다."

-북한 핵개발의 목적이 적화통일인가.

"혹자는 북한의 핵개발 목적을 '미국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건 북한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북한 체제의 내부 결속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북한 체제에서 핵은 단순한 무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체사상과 맞먹는 '강성대국'의 상징이다. 체제 결속을 위해 핵을 개발한다는 논리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을 한번 살펴보자. 전 단계는 인민민주주의혁명 역량을 남쪽에 심고 환경을 조성한 뒤, 후 단계는 무력을 동원한 남조선 해방이다. 전 단계(간접 침략)와 후 단계(무력 침공) 모두에서 핵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얘기다. 핵 개발의 이유는 적화통일의 원동력을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핵을 가진 북한과의 공존은 불가능한가.

"공존할 수 없다. 공존한다면 굴욕적이고 노예적인 공존이다.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되는 걸 막지 못하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의 북한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핵을 직접 갖는 것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북한처럼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미국의 핵우산을 확실히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국군.미군의) 작전 책임이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핵우산이 보장됐다. 그러나 전작권 단독행사 시 핵우산을 쓸 수 있느냐 여부는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전쟁억제는 심리적인 것이다. 북한이'남한을 공격하면 미국이 확실히 핵으로 보복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한.미 동맹이 돈독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전작권 논의는 중단돼야 한다."

-우리 정부는 군사적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이 딱 부러지게 반대해선 안 된다. 군사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북한 핵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지금까지 증명됐다. 북한은 1990년대 후반 200만~300만 명이 굶어 죽는 현실에서도 핵무기를 개발했다. 핵무기 하나 만드는 데 5억 달러가 들어가지만 핵 개발을 계속했다. 경제 제재를 통해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 김정일 자신이 직접 생명의 위협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내가 죽거나 체제가 망가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전쟁을 하는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 보유는 안 된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위기는 스스로 경계하고 대비하는 자를 벌주는 법도, 나태하고 교만한 자를 피해가는 법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서승욱 기자<sswook@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 김희상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은=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11개월간 청와대 국방보좌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중장. 국방보좌관 재임 당시 이라크 파병과 주한 미군기지 이전, 협력적 자주국방 계획 등 굵직한 국방 현안을 처리했다. 이라크 파병 규모 등을 둘러싸고 청와대 외교안보팀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88년부터 5년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국방담당비서관을 지낸 군사전략 전문가다. 경남 거창 출생(61세)으로 경복고.육사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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