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해·공서 "북 핵실험 증거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핵실험을 했는지 여부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실험이 진행된 지역의 주변 토양에서 방사능 유출 여부를 조사하는 일. 그러나 북한이 이를 허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점점 더 과학기술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보력에서 가장 앞선 미국은 KH-12라는 정찰위성을 적극 이용하고 있다. 지진 규모 4에 가까운 인공지진이 이뤄졌다면 적어도 인근 지역의 등고선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하에서 핵실험을 하면 큰 구덩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이춘근 박사는 "파키스탄 또한 북한과 마찬가지로 360m 높이의 산 지하에서 핵실험을 했다"며 "실험 전과 후의 위성사진을 비교하면 산이 사라질 정도로 등고선의 변화가 심했다"고 설명했다.

KH-12는 200㎞ 상공에서 10㎝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해상도를 지니고 있다. 올 7월 말 정상궤도에 안착한 우리나라의 아리랑 2호의 해상도가 1m급인데 비하면 100배 정밀한 것이다.

KH-12는 원래 지상 500~600㎞ 상공에서 초속 8㎞의 속도로 지구를 14바퀴 정도를 돌며 영상정보를 수집하는 군사용 정찰위성이다. 허블망원경급의 직경 2.4m 렌즈를 장착하고 낮에는 전자광학, 밤에는 열적외선을 이용해 촬영한다. 그러나 북핵과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위성 내 연료와 추진장치를 이용해 200㎞ 고도 부근으로 하강해 의심 가는 지역을 보다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항공대 장영근 교수는 "KH-12의 무게는 18t인 데 비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7t이 로켓용 연료 무게일 정도로 지상 근접 등 이동성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KH-12가 수집한 영상정보는 미 국립정찰사무국(NRO)으로 실시간으로 보내져 정밀분석에 쓰인다. KH-12와 함께 정찰위성으로 쓰이는 라크로스는 레이더를 이용해 1m 해상도로 차량의 종류를 식별할 수 있다. 두 위성에서 나온 정보는 이라크전에서 장거리 미사일의 표적정보로 사용, 충분한 위력이 입증됐다. 미국은 정찰 위성의 데이터를 통해 아직까지 핵실험 장소 부근에서 등고선의 변화를 찾아냈는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현재 제2의 핵실험 징후라도 잡기 위해 안테나를 바짝 올린 상태다.

공중에선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WC-135C 핵실험 관측기와 주한 미군의 U-2 정찰기가 가동 중이다. 북한 영내로는 직접 들어갈 수 없어 인접 지역 등을 맴돌며 대기를 분석 하고 있다. WC-135C는 비행 중 기체 내로 대기를 흡입하면서 매우 미세한 필터 등으로 대기의 성분을 조사할 수 있는 전자 정찰기다. 핵실험에 뒤따르는 크세논과 크립톤 등의 방사성 물질의 존재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전시에 사용하는 프레데터와 같은 무인 정찰기를 동북아 일대에 투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도 항공자위대의 T4 연습기를 띄워 대기 중의 물질을 포집해 봤지만 방사성 물질의 존재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지상에서는 첨단 방사능 탐지기들이 가동 중이다. 국내에서도 전국 26곳에 무인 측정소가 운영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자연방사선 기준치 이상의 방사선이 측정되면 경보를 울리는 역할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2001년 인공방사선을 먼 곳에서 측정할 수 있는 환경방사선 감시기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요오드나트륨을 센서로 사용해 환경방사선이 어떤 핵종에서 나왔는지도 측정할 수 있다.

과학기술부는 이와 함께 핵실험에서 방출되는 크세논 기체를 탐지하기 위한 측정장비를 스웨덴 국방과학연구소로부터 임대, 11일 긴급 공수해 왔다. 크세논 측정 장비는 강원도 북부지역 방사능 탐지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다.

스웨덴의 크세논 측정 장비를 이용해 대기 중의 크세논을 검출하면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과기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했더라도 바람이 북쪽을 향할 경우 크세논 측정 장비로도 북한 핵실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