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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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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봄. 진해 해군기지에 오카다라는 일본인 노인이 나타났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서 핵무기를 연구했다고 해 해군함정을 보내 모셔왔다. 설계도면을 한 뭉치 들고온 그는 "원자탄.수소탄 다 만들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솔깃했다. 당시로는 거액인 10만 달러를 연구비로 줬다. 진해 앞바다의 무인도에 모셔놓고 칙사 대접을 했다. 해군 대령 계급과 20대의 젊은 여인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모두 '뻥'(거짓말.허풍)이었다. 그는 배터리 기술자에 불과했다. 물을 분해해 얻은 수소를 가득 채운 철제 탱크를 원자탄이라고 속이고 이 대통령을 모셔 진해 앞바다에서 폭발 시험도 보였다. "저건 10볼트짜린데 100만 볼트로 만들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보다 위력이 클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항구 안에서 핵을 터뜨린다는데도 모두 속아넘어갔으니 지금 들으면 웃음밖에 안 나오는 이야기다.

오히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맨해튼 계획을 어렵게 승인했다. 한 방에 수십만 명이 사는 도시를 날려버릴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말을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원자탄은 원래 잘 짖는 개처럼 요란한 물건이다. '상호확증파괴전략(MAD)'에서는 핵무기를 쓰기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쓰지 않기 위해 만든다고 한다. 핵전을 벌이는 상대는 서로 절멸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오카다가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속여도 엄포용으로 쓸모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일단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위력을 본 뒤론 솥뚜껑 보고도 놀라게 된다. 2004년 9월 서울에서 그런 소동이 벌어졌다. 양강도에서 강력한 폭발이 있었는데 인공위성 사진에 지름 3.5~4㎞의 버섯구름이 찍힌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핵폭발이라고 법석을 떨었다. 북한이 평양의 외교관들에게 삼수 발전소 발파 작업이라고 해명한 뒤 소동은 끝났다. 버섯구름이 구름이었는지, 안개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조잡한 정보력을 드러낸 한국 정부만 망신을 당했다.

지난 9일 김책시에서 다시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지진 규모 3.6. TNT 800t을 한꺼번에 터뜨린 크기다. 이번에는 북한이 신속하게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핵폭발이라기엔 너무 작은 지진이다. 핵 폭발 때 나오는 크립톤85 등 방사능 물질도 검출되지 않았다. '뻥'이라고 밝혀지면 좌파단체가 다시 '반핵(反核)'을 외칠까. 그러나 북한이 우기는 한 허풍인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