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부 출국… 대미 유화제스처/중국 정부 왜 석방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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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방 경제제재 완화 “카드”/미ㆍ중 개선 새돌파구 열듯
중국 자유화 운동의 상징인 팡리즈(방려지)와 그의 출국을 중국당국이 허용한 것은 6ㆍ4천안문사태에서 보인 중국의 무력진압에 항의해 제재조치를 취해온 서방국가들,특히 미국에 대한 최대의 유화제스처인 동시에 미중간 타협의 산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천안문관계자들의 전면적인 석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중국당국의 조처는 우선 시기적으로 다음달 7일에 개최되는 휴스턴서방 7개국(G7)정상회담에 임박해 취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G7은 천안문사태 직후인 지난해 7월의 아르슈정상회담에서 대중제재조치로 ▲정부고관의 접촉 및 무기수출의 금지 ▲세계은행에 의한 신규융자 심사의 연기 지지등을 결의했었다.
중국은 이에 대해 「내정간섭」으로 반발하고 강경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올들어 중국은 천안문사태 관련자들을 잇따라 석방하고 이에 상응한 서방국가들은 경제제재 완화움직임을 보여왔다.
미국의 대중최혜국대우 연장,영국 외무차관의 방중,프랑스의 대중원자력발전소 건설협상단 파견,일본의 대중 엔차관 재개움직임등이 그것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그동안 경제적 타격을 받아온 중국은 방려지 출국동의라는 최후의 카드를 제시함으로써 중국문제가 다루어질 것이 확실시되는 휴스턴 G7정상회담에서 대중제재가 청산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강경파인 리펑(이붕)총리는 방려지가 출국하는 그날 서독 의원방문단을 맞아 중국이 정치적 자존심대신 현실적 이해관계를 선택한데 따른 고심과 이번 조처의 목적을 동시에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관영 신화통신이 전하고 있다.
『지난해의 풍파(천안문사태에 대한 완화된 표현)관련자들에 대한 관대한 조처는 서방측의 압력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형세가 그만큼 안정되었기 때문』이라면서 서방측의 주문과는 우연한 일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붕은 주장했다.
그는 『서방의 원대한 안목을 정치인들이 지혜와 용기를 갖고 중국과 서방과의 관계발전을 위해 노력해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중국의 본심을 노골적으로 털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천안문사태이후 위기국면에 빠진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측에 총 8천1백억엔 규모의 제3차 차관(90∼95년간)의 조속한 동결해제조치를 요구해왔는데 이번 방려지의 출국허용으로 해결점을 찾을 전망이다.
천안문 사태이후 국가의 안정을 모든 것에 앞서는 중대사로 제기해온 중국당국으로서 이같은 현실을 더이상 정치적 명분에 이끌려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방려지의 출국허용은 서방측의 경제제재에 대한 중국의 굴복인 셈이다.
그러나 방려지출국이 경제제재조치의 해제로 연결된다고 해도 중국이 앞으로 봉착할 과제는 여전히 큰 것으로 지적된다.【홍콩=전택원특파원】
◎방려지/안휘성 과학기술대 부총장 역임/당4대노선 부정… “중국의 양심”
「중국의 양심」인 팡리즈(방려지)는 86년말 당시 민주화요구시위를 벌인 안휘성 합비시의 과학기술대 부총장 재직시 이를 지지,일약 서방세계에 「투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 시위에서 학생들에게 부르좌적 자유주의를 선전하고 「반혁명 폭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공산당원자격과 교수직을 동시에 박탈당했다.
그는 중국의 마오쩌둥(모택동)식 사회주의를 무용지물이라고 비난,중국의 헌법전문에 들어있는 4대기본노선을 부인했으며,중국공산당 지도부가 거액의 국고를 해외은행에 빼돌려 놓았다고 폭로하는등 중국당국에는 「미운 털」이었다.
36년 절강성 항주에서 우편배달원의 아들로 태어난 방은 16세때 북경대에 입학,천체물리학을 전공했으며,50년대 중반부터 당의 독선적 권위주의를 비판,57년 당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66년 문혁때에는 대학에서 쫓겨나 3년간 하방되기도 했으나 71년 교수직에 복귀,78년에는 공산당에 재입당했다.<이춘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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