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웃노인께 배우는 "옛살림 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18일 오후2시 재동국교 1학년2반 교실. 비가 쏟아지는데도 17명의 할머니선생님들과 30명의 30대 주부학생들이 어김없이 나란히 등교, 교실을 빈자리 하나없이 가득 메우고 있다.
『동정을 달때는 깃너비만큼 올리거나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 두개를 나란히 뉘어 그 간격만큼 올려서 달면 잘 들어맞아. 일단 자리를 잡았으면 동정을 깃에 대고 한번 바늘을 꽂은 다음 동정을 꺾어보아 곽 물려졌으면 바느질을 해도 돼. 바늘땀이 너무 넓을 경우 저고리를 입으면 동정이 벌어지고 너무 촘촘하면 동정이 울어 보기싫으니까 조심해야돼.』
허성혜할머니(63·서울삼청동)가 옆자리에 얹은 신영숙씨(36·서울 가회동)에게 시범을 보이면서 바느질감을 물려준다. 제동지역사회학교가 마련한 동정달기교실은 간간이 시집살이의 어려움까지 서로 주고받으며 30분도 못지나는 사이에 친숙한 사제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이 지역사회학교는 한달에 한번씩 장담그기, 한과만들기도 가르쳐준다. 동정을 난생 처음 달아본다는 신영숙씨는 『친정어머니가 한복을 즐겨 입으셨는데도 결혼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가 안계셔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서 『이젠 시댁에 가기 위해 한복을 입을 때 5백원을 들고 세탁소에 뛰어가지 않아도 되겠다』며 은근히 자랑스러운 눈치.
『젊은 사람들이 동정이라도 달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서 기꺼이 노인강사가 되기로 했다』는 유금녀씨(66·서울 원서동)는 『생활이 바쁘다보니 분가해 살고 있는 딸과 며느리에게는 미처 가르쳐주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할머니솜씨전수교실에 참가해 시부모께 물려받은 솜씨를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최근들어 노인들이 앞장서서 젊은 주부들에게 옛살림 솜씨를 전해주는 일들이 늘어가고 있다. 서울시 노인대학협의회가 연2회 할머니·할아버지장터를 마련하고 장터가 열리는 기간동안 장담그기·한과만들기등의 살림요령을 일러주고 있으며, 김치박물관이나 일부 백화점에서 명가김장요령등을 주부들을 대상으로 지도하는 것 등은 그 좋은 예. 이는 지난날 대가족제도에서 집안솜씨로 대물림 받아오던 것이 핵가족화되면서 따로 배울 기회가 없어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이웃노인으로부터 살림을 익히는 추세로 변화된 것이다. 특히 이웃노인에게 받는 지도는 「고부」라는 심리적으로 다소 불편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도 없어 젊은 주부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6세된 둘째아들과 동정교실을 찾은 윤경숙씨(35·서울소격동)는 『핵가족으로 살다보니 옛것, 우리의 것을 잘모르고 지나기가 일쑤』라면서 『앞으로 할머니솜씨전수교실에 열심히 참가, 우리의 것을 익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노인솜씨교실은 노인들에게 역할을 줌으로써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느끼게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재동국교 안정원교장은 『학교가 지역사회의 중심이 돼 노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할머니들의 불평·불만이나 외로움을 덜어주는데 보탬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계속해서 한과만들기 적삼매듭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가겠다고 밝혔다. <홍은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