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발표는 핵보유국 인정받기 위한 정치적 협상용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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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미 국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10일 북한의 핵실험을 "핵 보유국이라는 협상 입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주장(a political claim if nothing else that tries to get the bargaining position of being a nuclear power)"이라고 표현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CNN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실험 주장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히고 "그래도 이는 핵 보유국이라는 협상 입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주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처음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함으로써 중요한 선을 넘었다"고 말했다가 인터뷰 진행자인 울프 블리처가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는 뜻인가"라고 되묻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분석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와 함께 라이스는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거나 침공할 어떤 의도도 없기 때문에 '미국의 침략 공포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북한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핵 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해결방안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어도 부시 대통령은 협상 이외의 옵션은 전혀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라이스는 '부시 정권이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거부해온 것이 북한의 핵실험을 불렀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6자회담의 틀이 아닌 북.미 직접 회담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이 공산주의 체제(북한)가 합의를 준수하도록 보증할 수 없기 때문 에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0년대 양국이 직접 협상을 했으나 당시 북한은 합의(94년 제네바 합의를 가리킴)를 해놓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합의 준수 보증의) 지렛대가 되는 다른 나라들의 압력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김정일이 미국과 양자회담을 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그래서 중국.한국.일본.러시아 등이 함께 6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김정일이 알아야 하는 것은 그가 증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할 경우 더 나은 길이 있다는 점"이라며 "(핵무기 포기는) 협상과 국제사회에 대한 개방, 그리고 북한 주민에게 더 나은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 진행자인 블리처는 라이스 장관에게 '(조지 W 행정부에 몸담으면서) 거의 6년간 해온 김정일과 관련된 일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제네바 합의가) 과거 클린턴 행정부의 실책이었다는 말이냐'를 비롯한 공격적인 질문을 계속 했다. 이에 대해 라이스 장관은 "북한은 수십 년 전부터 핵무기를 추구해왔다" "(북핵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과 관련해 누구를 비난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깬 것은 이 합의가 전략적으로 허약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당시와 같은 북.미 직접 협상이 아닌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의 핵실험 성공 발표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엄청나게 큰 일(massive event)이냐고? 아니 그냥 일이다"라고 말하는 등 미 행정부는 북한 핵실험 발표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미 언론들은 핵실험 성공을 뒷받침할 방사성 물질 등 물증이 아직 잡히지 않은 데다, 북한의 발표 이후 미 국내에서 '정책 실패로 북한의 핵위협이 오히려 더 커졌다'며 부시 행정부 대북 정책의 총체적 실패론이 고개를 드는 것을 의식한 측면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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