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700원짜리 급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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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종종 학교 밖으로 '우유 폭탄'이 떨어진다. 아이들이 급식 때 나오는 우유가 질이 너무 떨어진다면서 안 먹고 장난삼아 우유팩을 집어던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엔 초등학생이 학교 급식으로 나온 비빔밥을 먹다가 철사에 식도가 뚫려 중상을 입기도 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23일 S급식업체 대표가 폭로한 급식 비리는 그 답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이 업체가 서울 소재 두 고등학교와 학교 급식 계약을 체결하면서 학교 관계자들에게 제공했다는 향응과 금품은 부패한 음식처럼 썩은 냄새를 풍긴다. 폭로한 업체 사장이나 이를 부인하는 학교 관계자 모두 학생들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요정 접대비 5백만원, 고스톱비 5백만원, 2차 요구(아가씨비.호텔비.교통비) 3백20만원…'.

물론 몇몇 학교의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행 학교 급식 체계를 꼼꼼히 살펴보면 여기저기에서 구린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

학교 측과 계약한 위탁 업체는 많은 돈을 들여 학교에 조리시설을 세우고 계약기간에 본전을 뽑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지어준 시설이나 식기 등을 돌려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아이들에게 한끼당 2천원씩을 받고 7백~8백원짜리 식사를 제공하면서 학생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교장 등에게 뇌물을 상납해온 업체 대표가 구속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니 학생들의 건강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학교 급식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한 교육 당국자들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어린 학생들을 볼모로 한 어른들의 추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강홍준 정책기획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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