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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정정/끓어오르는 휴화산(특파원코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공무원 무사안일ㆍ군부 부정부패/국민인내 한계점에
【양곤(미얀마)=오체영 특파원】 미얀마 공무원사회에는 『행동없으면 처벌없고 해고도 없다』는 오래된 처세격언이 있다.
지난 62년 네윈의 군사쿠데타 이후 현정부의 실력자 소우 몽 장군에 이르기까지 28년간의 1인 군사정부 통치기간중에 생겨난 무사안일주의를 단적으로 드러낸 자조섞인 말이다.
네윈은 지난 88년 민주화 시위에 굴복,사회주의계획당(BSPP) 의장에서 물러날때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수많은 반대파를 숙청한 장본인이다.
소우 몽 장군도 마찬가지로 지난 88년 9월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하고 집권한 직후 시위에 참가한 모든 공무원들을 구속 또는 해직시켰던 「막강한」인물이다.
지난 5월27일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 민족민주전선(NLD)에는 다수의 해직 공무원ㆍ군인이 당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구속중인 의장 틴우 전국방장관과 현대변인 우지몽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격동과 파란을 겪으면서 공무원사회에는 자연 무사안일과 눈치보기ㆍ무책임성이 만연케 됐다는 것이다.
지난 11월 군사평의회인 집권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의 공보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우 자우 순 위원장 등 회견에 참석한 5명은 기자의 질문에 홍보성 발언을 제외한 상당부분을 『모른다』『상부에서 결정할 일』『소우 몽 장군이… 말씀하셨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특히 아벨 무역성장관(현역 소장)과의 인터뷰 약속이 갑자기 취소된 일은 미얀마 정치권력의 「1인 집중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친한파로 알려진 아벨장관은 당초 인터뷰에 응할 뜻을 밝혔으나 『상부의 허가가 나면 하겠다』며 미루다가 결국 『할 수 없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는 『모든 고급관리들의 외국기자와의 인터뷰를 금지키로 정부방침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이같은 소수 군부실력자들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군과 정보기관이다.
미얀마정부는 최근 계엄령을 해제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수도 양곤 시내에는 22개 군부대가 있으며 시내 곳곳에,심지어 파고다(사원)안에서까지 무장한 군인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군보안대의 감시는 『날아가는 새가 하는 소리도 네윈이 안다』고 할 정도로 엄중했으며 88년 민주화요구 시위땐 이들이 시위자들의 사진을 찍은뒤 식별,처벌할 정도였다.
현정부의 제1서기장이며 군보안대장인 킨윤도 소우 몽 다음가는 2인자로 알려져 있다.
국민여론의 대변기관이랄 수 있는 언론도 전부 정부의 홍보지로 전락해 있는 실정이다.
미얀마의 통신ㆍ일간지ㆍ방송국은 모두 국영이다. 정부 공보문화성산하 신문잡지공사에 내외신 2개,영자 일간지 4개,미얀마어 일간지와 1개 잡지사가 있다. 그밖에 TVㆍ라디오 방송국이 있다.
신문은 심사위원회의 철저한 검열을 거친후에야 보도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일간지인 「노동자신문」은 12면으로 지면의 반이상을 정부각료들의 행사ㆍ발언과 소우 몽 장군이 군의 역할등에 관해 행한 홍보성발언으로 채우고 있다.
TV는 채널이 하나뿐. 매일 오후 7시∼10시까지 3시간 방송하는데 1시간 이상을 홍보성 뉴스와 군가방송으로 일관,국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식인들은 인도에서 방송되는 영국 BBCㆍ미국의 소리(VOA)ㆍ인도라디오의 미얀마어 방송을 즐겨 듣고 있다.
NLD의 우 지몽 대변인은 『이들을 통해 외부소식을 들었으며 특히 동구변혁소식은 이번 총선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들 방송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온 미얀마정부는 총선을 전후해 입국을 허가한 외국언론사중 이들 3개사를 제외시켰다. 특히 관광비자를 발급받아 입국,취재활동을 한 BBC기자를 추방하기도 했다.
현지에 나와 있는 한국기업의 주재원들은 이같은 분위기에 대해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미얀마사회는 겉보기에는 정부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차 있다. 국민들은 군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리고,굳게 닫힌 국회의사당과 무장군인이 지키고 있는 아웅산 수키여사의 집앞을 무심코 지나가고 있다.
「강요된 평화」가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얀마 정국은 「용암이 끓어오르는 휴화산」이라고 현지의 외국인들은 말했다.
28년간의 군부통치기간 동안의 「폐쇄된 벙어리생활」과 동남아 최대 부국에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한 경제정책 실패등 군사정부의 실정에 대한 환멸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군부지도자들은 권력을 이용한 부정축재로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네윈은 집권당시 도박ㆍ오락 등을 금지시켰으면서도 그 자신은 가장 무더운 3∼4월 건기때는 스위스로 피서여행을 떠나곤 했다는 것이다.=
군부지도자들의 이같은 생활자세가 오늘날 미얀마사태의 한 요인이 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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