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가입 10년 … 협상 주역 김중수 교수가 본 '한국경제 그 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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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후 10년간 경제의 덩치는 커졌지만 삶의 질은 뭐 하나 나아진 게 없다. 가입한 다음 할 일을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다."

1996년 OECD 가입준비사무소장으로 가입 협상을 주도했던 김중수 경희대 교수가 쓴소리를 쏟아냈다. OECD 가입만으로 당장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게 아닌데도 어설픈 사후 대응으로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 등의 정권 구별 없이 10년간 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대한민국 정부 자체에 대한 비판인 듯하다.

그는 "OECD 가입은 단지 일류대학에 입학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며 "입학 후 숙제와 공부를 열심히 해야 비로소 선진국 자격을 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한다.

그는 특히 "금융시장을 자유화하면서 감독 시스템부터 강화했어야 했는데 가입 직후 여야가 대통령 선거로 다툼만 하면서 제도적 보완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런 궤도 이탈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되풀이됐다고 그는 지적했다. 지난 몇 년간 과감한 개방을 두려워하는 내부지향적 사고, 경쟁을 억압하는 평등주의적 사고가 팽배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료나 법률 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해야 우수한 인재들끼리 경쟁하면서 성장동력에 불이 붙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데 개방의 부작용만 무서워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끼리 잘해보자'거나 '우리만의 잣대가 중요하다'는 인식으론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복지가 늘면 성장하고, 성장하면 다시 복지가 늘어나는 선순환을 얘기하는데 이는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선진국들은 성장을 한 뒤 그 이익이 고루 돌아가는 것을 동반성장으로 이해하는데 정부는 잘못된 논리를 펴고 있다는 얘기다.

또 유럽의 복지모델이 좋다며 좇아가고 있지만 유럽이 복지정책을 도입하던 당시의 여건은 지금 한국 실정과는 다르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고집하는 평준화 교육이나 사회적 일자리 등도 선진국의 주된 흐름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목표가 나쁘진 않지만 이념적 편향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과 대통령 경제비서관을 지낸 뒤 95~97년 OECD 가입준비사무소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3년간 KDI 원장으로 일했다. 현재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지난 10년 어떤 변화 겪었나=한국이 96년 10월 11일 OECD에 가입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 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 장밋빛 꿈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입 1년 만에 외환위기가 닥쳤다.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지만 OECD 가입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정부가 환율을 무리하게 낮추고 금융시장을 성급하게 개방한 탓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도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간 크게 성장했다. 국내총생산(GDP)은 96년 5574억 달러에서 지난해 7875억 달러로 41.3% 늘어났다. 그러나 그동안 경쟁국들의 덩치는 더 커졌다. GDP 규모는 2004년 인도에 뒤지더니 2005년엔 브라질에도 추월당하면서 세계 12위로 밀려났다.

국민의 실질 경제력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실질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물론 연간 근로시간 등 주요 삶의 지표는 30개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바닥권에서 헤매고 있다. 성장동력도 약화돼 OECD 가입 전 7~9%에 이르던 성장률은 노무현 정부 들어 3~4%로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정책이 지속되면서 설비투자와 민간소비가 활력을 잃은 데다 저출산.고령화의 후유증까지 더해졌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어렵사리 OECD 회원증을 따낸 다음의 세월이 오히려 '어두웠던 10년'이었다는 얘기다.

김동호.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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