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부엌가구 시장 강자 에넥스 박진호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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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이 가정생활의 중심이 돼야 행복해진다." 박진호(44.사진) 에넥스 사장의 지론이다. 박 사장은 실제 주말마다 앞치마를 두른다. 그가 요리 취미를 갖게 된 것은 2000년. 당시 둘째를 낳고 힘들어 하는 부인을 돕고자 부엌 출입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요리는 스트레스를 풀고 제품 아이디어를 얻는 경영활동의 일부가 됐다. "요리할 때면 경영기획 회의를 할 때 만큼이나 몰입하게 됩니다. 요리를 하다 보면 주부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죠."

박 사장의 '주부 체험'은 제품 개발에 반영된다. 그는 대형 주택에만 설치하던 '아일랜드 형 주방(개수대와 조리대가 거실 쪽을 향하는 개방형 주방)'을 개량해 일반화시킨 장본인이다. 걸치적거리는 주방가구 손잡이를 과감히 없앤 제품(핸들리스)은 2003년 우수산업디자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부엌 설계엔 가사노동의 효율성은 물론, 위생과 미관 등 수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박 사장의 생각이다.

이는 1971년 국내 부엌가구의 신기원을 연 부친 박유재(72) 회장의 창업정신을 이어받은 것이다.

박 회장은 "어머니의 휜 허리를 펴드리고 싶다"며 부엌가구 사업을 시작했다. 에넥스는 국내 부엌가구 기술을 선도해 왔다. 87년 이음새 없는 상판을 도입해 싱크대의 악취와 해충 문제를 해결했다.

92년엔 접착제를 사용 않고 자외선(UV) 도장으로 판재를 코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UV 도장기술은 '나무색' 일색이던 가구에 '컬러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93년엔 '주방가구연구소'를 설립해 '첨단 부엌가구'를 목표로 체계적인 기술개발에 나섰다.

조리대와 개수대 높이를 버튼 하나로 조절하는 제품 등을 업계에서 가장 먼저 내놓을 수 있었다.

한국과학기술원 박사 출신으로 KT 위성사업단에서 일하던 박 사장도 2002년 박 회장의 부름을 받고 우주항공 과학자에서 가구업체 경영자로 변신한 이후 기술 개발을 경영 화두로 삼았다. 그는 부임 직후 친환경 신소재 개발에 매달렸다. 휘발성 유기용제가 들어가는 기존 도료 대신 수용성 도료를 쓰기로 한 것이다. 세계 유수 가구공장의 설비를 분석한 끝에 이탈리아에서 50억원짜리 설비를 도입했다. 하지만 제품이 나오기까지 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도료를 입힌 뒤 판재를 자르면 도료가 벗겨지면서 절단면에 홈이 패이는 현상이 반복됐던 것. 더욱이 2004~2005년 건설경기가 나빠졌는데도 투자를 늘린 탓에 경영 성적표는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2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박 사장은 도료 제조사 및 목재회사 등과 함께 성분과 재질을 개선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난 5월 친환경 소재 '워터본'을 적용한 부엌가구를 내놓을 수 있었다. 에넥스는 '워터본'의 히트로 올 상반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환경호르몬 방출이 거의 없고 항균 기능까지 갖춘 '냄새 나지 않는 부엌'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이 늘어난 덕분이다.

중국 사업도 서서히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2004년 중국 랑팡에 공장을 세운 에넥스는 현재 베이징.상하이.선양 등 10여 곳에 전시장을 갖고 있다. 지난해 25억원이었던 중국 사업 매출은 올해 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박 사장은 "그동안 신기술 개발에 치중하느라 유통망 정비에 소홀했던 측면이 있다"며 "매장을 대형화.고급화하는 등 소비자 마케팅을 강화해 건설경기 침체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 설립연도:1971년

▶ 매출액:2135억원(지난해), 2200억원(올해 목표)

▶ 영업이익:-26억9000만원(지난해), 50억(올해 목표)

▶ 본사 및 사업장:서울 서초동 본사, 충북 황간 및 경기도 용인 공장

▶ 임직원:600명

▶ 주요 생산품목:부엌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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