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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로 밀린 막장인생 좌절과 꿈 캐내|이효석의 농익은 향토적 묘사 무대|정선아리랑 한서린「탄광문학」산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비행기도 이 보다 더높이 날수 없다는 비행기재·수라리재, 그리고 단종이 유배돼오며 억수같은 한을 소나기로 울었다는 소나기재등 아흔아홉 굽이들로 막히고 갇힌 태백시, 영월·평창·정선군. 이 네 지역은 해발1천5백여m의 태백산을 중심으로한 하늘아래 첫동네들로서 태백산권으로 불린다.
이지역을 중심으로 강원도 전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정선아라리 가사는 이지역문화의 살아있는 전형으로 볼수 있다. 『정선읍내 물레방아는 사시강철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의 서방님은 날 안고 돌줄 모르나.』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고려조가 망하자 부사이군의 충신 7명이 정선 거칠현동으로 찾아들어 망국의 한을 읊은 것이 정선아라리의 효시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지역에서 정선아라리가 전승·창작돼오는 과정에서 충절은 물론, 자연과의 친화·애정등 그 내용이 꿈과 삶 전반으로 확산돼 나오고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정선아라리 5백17편을 분석한 결과 욕구좌절에 기인한 한탄이 70%를 차지한다는 한 연구결과와 진도나 밀양 아리랑보다 느리고 애조띤 가락으로 인해 정선아라리는 한의 정서가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볼수 있다.
그러나 후렴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고개로 날 넘겨주오』에서 적극적인 한의 극복의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정선아라리다.
그렇다. 태백산권 문화는 하늘아래 첫동네 오지로 밀려든 삶의 막장에서 캐올린 한과 그극복의 문화다. 지리적인 오지, 정신적인 오지인 이 곳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문화는 때문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인지문화·교학이라고도 할수 있다.
이 인지문화는 정처없이 깊은 산길과 냇길을 떠도는 강돌뱅이의 애환과 사람을 그린 이효석(1907∼1942년)의 『메밀꽃필무렵』으로 우리 현대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하게된다. 평창에서 태어나 이곳에 묻힌 이효석은 30세에 발표한 『메밀꽃 필무렵』의 예술성과 그 기법면으로 하여 우리 소설사에서 단편소설의 한 모범을 보였다.
『이즈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느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된다. 달은 지금 긴산허리에 걸려 있다.』
장돌뱅이 허생원의 뿌리없는 삶도 이효석의 향수적 정서가 농익은 향토묘사로 인해 아연 살만한 낭만적 삶으로 바뀌며 이 고장 또한 민족의 가슴에 낭만적 장소로 각인됐다.
지난5월 문화부는 이효석의 생가가 있는 남안동을 시범문화마을로 지정했으며 이와 때를 맞춰 작년「이효석문학상」을 제정한 월간『동서문학』주관으로 이효석의 생가와 묘·봉평장터등을 시찰하는 이효석문학유적답사가 문인 6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달 26∼27일 이틀간 실시됐다.
그러나 이효석생가는 그가 태어난 지점일뿐 그옛모습은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원래의 초가대신 새마을운동으로 개량한 슬레이트집이 볼썽사납게 서있었다. 뒤늦게나마 평창군 당국에서 원형을 복원한다니 다행이다.
한과 극복, 혹은 뿌리내릴수 없는 오지의 인지문학은 태백시 문단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전국에서 두개 면만 빼고,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모여와 사는데가 탄광촌여. 돈벌어 갖구서 내일이면 떠나리라 하문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니, 십년 이십년이 되어뿌리는 거지….』 (김종성씨의 단편『석탄』중)
『진실과 맞붙어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깨어나 우리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되, 그반영을 통해 현실을 극복할수 있는 내용을 담을 문학을 고집한다』며 80년 창립된 태백시의 「불뫼문학 동인회」는 막장 인생들의 좌절과 꿈, 노다지를 캐되 자기만 챙기면 된다는 자본주의의 원시적 원형질을 힘있게 묘파하면서 우리 문학사에 「탄광문학」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보태고 있다.
현재 전장르에 걸쳐 34명을 회원으로 두고있는「불뫼문학동인회」는 최기인씨를 시작으로 최성각·김종성·박상우·이광식·김종삼씨등으로 연결되는 탄광소설군단을 80년대 중앙문단에 진입시켰다. 이들은 동인지로 『불뫼』를 간행하고 있으며 10월에 열리는 태백제기간중 문학의 밤을 매년 개최, 주민들과 만나고 있다.
단종의 충사를 장능·청냉포등 문화유적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영월에는 79년 국교교사를 주축으로한 「벗지문학동인회」회원 30여명과 85년 영월고등학교 재학생들로 구성 된 「장터문학회」동인 7명이 동인지를 발간하고 문학강연회·시화전등을 개최하고 있다.
또 이 지역신문인 『강원남부신문』 문화부 차장으로 있는 시인 주용선씨는 고등학생들로 「솔밭시문학회」를 조직, 시창작 지도를 하고 있다.
평창에는 「돌기와 문학동인회」와 「백오 문학회」동 두 동인이 활동중이다. 65년 교사 중심으로 창립된 「돌기와 문학동인회」는 그동안 정태모·김범권·곽영기·김선영·이우영씨등을 중앙문단에 내보냈으며 동인지 『돌기와』를 간행하고 시화전도 열고 있다.
1984년 교원연수서클로 출발한 백오문학회는 20여명이 전장르에 걸쳐 활동하며 해마다 동인지 『백오문학』을 내고있으며 평창군 향토문화재인 노성제때에는 시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정선에는 19명의 동인을 가진 「아라리문학회」가 활동하고 있다.
80년 발족된 「아라리문학회」는 회원들이 주축이되어 86년 지역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문인협회 정선지부를 결성, 태백산권 네지역중 유일하게 문협지부를 갖게됐다. 동인지로 『아라리문학』을 간행하고 있다. 동인지를 제외한 발표 지면은 올초 주간으로 창간된 『강원남부신문』의 주1회 1편의 시를 싣는 난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태백산권문학은 탄광지대에서의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한 소설이나 시로 탄광문학의 장을 열며 많은 문인들을 당당하게 중앙문단으로 입성시켰다.
이는 바로 향토에서 얻은 구체적 경험을 살린 문학만이 살아남을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다. 향토에 대한 애정없이 중앙문단의 세련이나 흉내내 「문인입네」하며 지역에서 「고상하게 존경」받으려만 한다면 그러한 문학은 없느니만 못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막장에서의 한계노동이기에 더욱 절실히 노동의 의미가 드러나는 탄광, 산첩첩 물첩첩 에워싸인 고독, 그리고 한이 저절로 우러나올 수밖에 없는 향토적 특성을 살려나간다면 태백산권문학은 노동문학의 탄광이 될것은 물론 순수문학의 기품있는 향기를 품길수 있을 것이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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