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기술교류 성급한 기대는 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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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개별기술 뛰어나지만 종합능력 떨어져/소 과학실정 아는 사람 적은것도 취약점
소련이 서방국가와의 기술교류를 적극 원하고 있지만 걸림돌이 적잖다.
몇년전 일본의 한 교수가 소련제 전자계산기를 입수했다. 분석결과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반도체의 기판은 유리섬유를 섞은 강화플래스틱을 쓰고 있었지만 버튼의 완충재로는 내구력이 없는 천연고무가 사용됐다.
여기 쓰여진 강화플래스틱은 고도의 군사기술의 산물. 그러나 반도체설계에는 미국기술이 유용됐고 대부분의 부품은 일제였다.
이처럼 한 제품에 고도ㆍ고가의 기술과 조악한 부품이 혼재해 있는 상태는 이뿐이 아니고 소련ㆍ동구의 많은 제품에서 발견된다.
소련은 전통적으로 우주항공ㆍ해양ㆍ의료ㆍ신소재 등의 분야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상륙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테트리스」라는 게임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대성공을 거두기도 하는등 컴퓨터 소프트웨어개발도 활발하다.
동구에서도 체코의 공업기술력은 정평이 나 있고 컴퓨터의 기초를 구축한 폰 노이만박사가 헝가리출신인 것처럼 하이테크분야에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같은 잠재력을 살리기 위해 소련ㆍ동구는 서방국가로부터의 첨단기술 도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자계산기의 예에서 보듯 「개별기술을 종합해 전체로 관리한다」는 개념이 결여돼 이상태로는 첨단기술을 도입한다해도 빈독에 물붓듯 정착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모스크바근교의 한 화학연구소를 찾은 서방학자에게 직원이 자랑스럽게 보여준 분석장치는 일본에서는 10여년전에 사라진 장치인데다 관리마저 엉성해 충분한 성능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술교류를 확대키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서방세계에 정치ㆍ경제와는 달리 과학기술에는 소련ㆍ동구의 실정을 아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 상대방을 잘 알지못하다보니 교류에도 의욕이 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완화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대공산권수출통제의위원회(COCOM)의 규제도 장벽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소련ㆍ동구와의 기술교류가 일방적인 기술유출의 결과만 빚지 않을까 주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잠재력이 풍부해 여건만 정비되면 상당한 단계까지 기술교류에 진전을 이룰 것이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란 판단은 공통적이고 우리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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