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이견 … 정책 일관성 잃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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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15년간에 걸친 한국과 국제사회의 외교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개발이 최종 단계인 핵실험을 향해 치닫고 있다. 주변국의 만류와 응징 위협이 나오고 있지만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과연 북한의 핵실험은 끝내 현실로 다가올 것인지, 아니면 우리와 국제사회가 이를 극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향후 핵실험 문제와 관련해 세 가지 옵션을 놓고 저울질할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 버티기식으로 현상유지하는 방법, 핵실험 포기.6자회담 복귀가 그것이다. 안보환경에 대한 평가와 함께 각 옵션의 득실 계산, 미국과 주변국의 태도와 경제에 미칠 충격 등을 종합판단해 북한 지도부는 핵실험 강행 여부에 대한 결단을 내릴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첫 번째 동기는 체제와 정권의 자기생존 논리 때문이다. 북한은 체제의 경직성과 전근대성으로 21세기의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극심한 경제난과 체제 위기를 겪고 있다. 김정일과 군부는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개혁개방을 통한 활로 개척이 아니라 핵무장이란 생존 전략을 택했다. 이들은 핵실험이 초래할 불이익을 부수적 비용으로 간주한 채, 핵보유국 지위의 완성을 추구한다.

둘째로 북한은 핵실험을 대미 협상을 위한 최후의 협상카드로 이용하려고 한다. 과거 벼랑 끝 전술로 북.미 대화와 북.미 합의에 성공하였듯이 같은 방식으로 대미 관계 개선을 꾀하려는 것이다. 셋째로 북한은 핵실험 이후에도 중국과 한국의 정치적 후원과 경제적 지원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의 핵실험을 억제하는 요인도 생각할 수 있다.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국제사회가 유엔안보리 결의를 채택해 북한을 규탄한 것은 그중 하나다. 중국의 비판적 입장 표명과 한국의 식량 제공 중단 조치도 북한에 큰 손실이므로 핵실험을 재고토록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계속되는 경제난과 7월 중순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도 북한의 추가 핵도발을 쉽지 않게 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의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론의 부상이다. 북한이 처한 상황의 절박성을 감안할 때 군부 주도의 핵무장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 이럴 경우 앞에서 언급한 핵실험 억지 요인은 비본질적인 고려 사항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 이들 강경파는 미국의 가시적인 양보 없는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할 것이다.

북한은 80년대 중반 영변 핵단지를 건설한 이후 지속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해 왔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남북대화와 북.미 대화, 6자회담이 추진됐고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1)과 북.미 기본합의문(1994), 6자 공동성명(2005)이 만들어졌지만 핵개발 저지에는 실패했다.

이번 사태는 과거 북한과의 핵협상과 관련해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우선 북한 지도부의 핵개발 의지를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각종 합의와 핵동결 조치에도 불구하고 끝내 핵계획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미 정부가 핵개발 저지의 기회를 적절히 활용치 못한 것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북한과 북핵 문제를 방치해 관계개선과 비핵화 실현의 기회를 놓쳤다. 한.미 간은 물론 한국과 미국 내부에서 각각 대북 접근 방법의 이견으로 북핵정책의 일관성과 추동력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도 문제다.

전봉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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