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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간 친구 오면 함께 축구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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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현이는 축구를 좋아한다. 하지만 축구를 같이했던 형, 동생들이 강릉으로 전학을 가거나 중학교로 진학해 축구를 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시작했다. 산골 아이 동현이가 선생님과 함께 텅 빈 운동장에서 골프 연습을 하고 있다(上). 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 동현 군.

"추석 때 강릉으로 간 친구들이 오면 같이 축구할 거예요."

국립공원 오대산 자락인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삼산3리 신왕초등학교 부연분교. 월정사 입구에서 주문진으로 가는 6번 국도를 타고 진고개휴게소를 지나서 다시 툴툴거리는 비포장 산길을 20리쯤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마을 속의 학교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20여 가구에 60여 명이 전부. 그나마 노년층이 대다수에 아이는 달랑 한 명뿐이다. 이 아이가 부연분교의 유일한 학생 지동현(11.5학년)군이다.

동현이는 요즘 가슴이 벅차다. 도시로 나간 친구들과 형들이 찾아오는 추석은 좋아하는 축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이 허전하다. 올 추석이 지나고 내년 3월이 되면 학교가 없어지고, 그러면 동현이도 마침내 이 학교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동현이는 박지성을 좋아하는 축구팬이지만 같이 뛰어줄 친구가 없어 마음에도 없는 골프를 친다. 지난 3월 강상영 교사가 이 학교에 부임하면서부터 시작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 뭘까 고민하다 인터넷에서 아동용 골프채를 기증받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강 교사의 지도로 골프채를 휘두르는 동현이는 가끔 타이거 우즈처럼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부연분교는 1954년 개교했다. 60년대만 해도 전교생이 60~70명이나 되었다. 교실 칠판엔 '떠든 친구' 4명의 명단만 전설처럼 남아 있다. '나홀로 학생'에 '나홀로 선생님'의 수업은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같이 라면을 끓여먹기도 하고 뒷산에 올라 알밤을 따기도 한다. 둘만 있으니 무엇을 하든 대화가 끊기지 않는다. 선생님과 학생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이어지면 어디에 있든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강 교사는 요즘 동현이에게 인터넷 검색을 지도하고 있다. 단순 지식의 전달보다 사회생활 적응을 위한 자립의식을 키워주는 것이 학습의 목표다. 하지만 동현이도 어쩔 수 없는 아이. 이 산골아이도 툭하면 컴퓨터 게임에 빠져들어 선생님을 속상하게 한다.

강릉교육청은 올 6월 주민공청회를 열어 내년 3월 부연분교를 닫기로 잠정 결정했다. 주민이 새로 이사를 와 취학아동이 있을 경우 폐교 결정이 유보된다는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선 그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주민들이 전국적인 학생 유치운동을 벌였지만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전학을 와서 같이 축구도 하고 놀고 싶다"는 동현이의 소박한 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이 고비다. 부연분교 2회 졸업생인 삼산3리의 백기봉 이장은 "교육청이 학생이 서너 명만 돼도 다시 학교 문을 열어주기로 약속했다. 추석에 객지에 나간 고향 사람들이 돌아오면 마을 회의를 해서 적극적으로 학생 유치운동을 벌여야겠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글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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