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후 소 거물 방한 “러시”/인적 왕래로 본 한­소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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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술·경제교류 앞세워 수교논의/카피차 전차관 “정치진전” 기폭제/과학아카데미·IMEMO관계자들 큰 역할
소련 인사들의 한국방문은 88년 9,10월 올림픽 이전까지는 몇몇 언론인들과 체육계인사들이 업무차 오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인적교류가 활발해진 것은 올림픽 직후 정계·경제계인사들이 대거 방한하면서부터.
올림픽이후 서울에 온 소련측 인사들은 경제단체와 학술연구소를 앞세운 관·정계인사들이 많았다.
올림픽 직후인 88년 10월과 89년 1월엔 골라노프 소연방상의부회장이 연거푸 방한했다.
골라노프는 11월엔 코트라측과 상호 경제교류실현을 위해 노력키로 합의했고 양국간 무역사무소 개설합의 이후인 1월 방한에선 무역사무소에 영사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을 우리측과 협의했다.
89년 2월엔 가브릴린 소 체육차관이 우리 체육부 초청으로 방한,양국간 체육교류를 논의했다.
4월엔 소연방상의의 말케비치회장·골라노프부회장 등 통상사절단이 방한해 소 상의 서울무역사무소 개설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정부부처및 경제단체를 방문,경제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말케비치회장은 정부간 무역대표부 설치에 여전히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7월엔 소련과학원 산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코를로프부소장,이바노프태평양문제연구소실장 등이 서울대 부설 국제관계연구소주최 학술회의 참가차 내한했다.
코를로프부소장일행은 『서독총리가 소련을 방문한 뒤 4년이 걸려서야 양국간 수교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상기해 달라』고 우리의 공식관계 수립요구에 제동을 걸었다. 이바노프박사는 특히 『소련은 북한의 불만을 단순히 묵살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9월엔 아르바토프 소 과학원 미­캐나다연구실장과 카피차 소 과학원 동양학연구소장이 각각 방한했다.
소련 극동담당외무차관을 지낸 카피차는 서울올림픽 1주년 국제학술회의조직위(위원장 고병익) 초청으로 방한,『한소관계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다』면서 『경제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양국 교류를 확대해 나간다면 정치관계의 진전도 이룰수 있을 것』이라고 전향적 발언을 해 주목을 끌었다.
아르바토프는 사회과학원 주최 「소련의 신사고와 아­태협력문제」 세미나 참석차 내한해 『소련내 대한정책토론 과정에서 한국을 완전 승인하자는 급진적 주장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들의 방한은 소련과학원산하 동양학연구소·IMEMO·극동문제연구소·미­캐나다연구소가 공동으로 수립하는 대한정책이 이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을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했다.
루카쉬 소 체육차관은 한소간 직항로개설문제를 항공사·교통부 등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르티노프 IMEMO소장은 민주당 김영삼총재와의 공동성명을 통해 김총재의 90년 3월 방소 초청사실을 밝혔다.
90년 3월엔 공산권의 세계은행격으로 모스크바에 본부를 두고있는 국제경제협력은행의 코크로프은행장이 한일은행 초청으로 내한,이규성재무장관등 정부인사도 만나 우리나라와 공산권의 경제교류및 국제금융협력방안 등을 논의했다.
3월엔 또 로구노프 모스크바대총장이 연세대초청으로 방한했다.
지난 4월엔 소련과학아카데미 극동문제연구소의 티타렌코소장이 한양대 중소연구소와 공동주최하는 제3차 한소학술회의에 참석했다.
4월엔 또 소련 각료회의 직속인 국민경제연구원의 아간베기얀원장이 방한,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과 만나 경협문제를 논의했다. 아간베기얀은 페레스트로이카 경제정책을 입안,주도하는 거물실력자로 알려지고 있다.
5월엔 소련의 장관급인 마그로프 에너지위원회위원장이 방한,동자부및 현대그룹관계자들을 만나 소련내 자원개발 문제를 협의했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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