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투자 몸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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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아 향후 세계 주요기업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 대표기업들의 성장세도 크게 둔화돼 매출액 증가율이 세계 주요기업보다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내용이 담긴 '주요 업종별 국내외 대표기업의 경영성과 비교' 보고서를 3일 발표했다. 한국 대표기업들이 이처럼 몸을 사리는 것은 국내 정책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는 등 사회적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커져 새로운 사업 진출 등 신규 투자보다는 현상유지를 위한 안전성 위주로 기업을 경영할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음식료.화학.철강.전기전자.자동차.통신 등 6개 주요 업종에서 국내 상위 3개, 해외 상위 3개 대표기업을 각각 선정해 2003~2005년의 경영성과를 비교 분석했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포스코 등 18개 업체가, 해외 기업으로는 도요타.GM.IBM.네슬레 등 18개 업체가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표기업의 부채비율은 세계 주요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국내 대표기업의 부채비율 평균은 2003년 124.4%, 2004년 111.4%에 이어 2005년 99.5%로 떨어졌다. 반면 세계 주요기업의 부채비율은 2003년 220.8%, 2004년 192.8%, 2005년 182.3% 등으로 한국의 대표기업보다 훨씬 높았다.

부채비율이 낮은 것을 나쁘게 볼 수만은 없지만 국내 대표기업의 보수적 경영과 투자 부진이 앞으로 성장 잠재력 약화로 이어져 세계 주요기업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기업의 신용상태를 평가할 때 쓰이는 유동비율(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것)은 2003년 107.1%에서 지난해 124.2%로 높아졌다. 이는 지난해 세계 주요기업의 유동비율(99.7%)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그만큼 한국 기업들이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대표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기보다 현금 보유 비중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성장세도 크게 둔화하고 있다. 한국 대표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2004년 24.1%에서 지난해에는 5.8%로 낮아졌다. 반면 세계 주요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04년 4.2%, 지난해 5.9%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와 화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한국 대표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세계 주요기업보다 낮았다.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다. 지난해 매출액에서 연구개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2%로 세계 대표기업(3.4%)보다 낮았다. 업종별로는 통신업이 2.2%로 세계 주요기업(1.2%)보다 높았지만 화학과 자동차는 세계 주요기업에 비해 2%포인트 이상 낮았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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