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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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 대립/여순사건 당지시 없이 발생/군내 파벌복잡… 남로당계에 김구계 동조가능성
48년에 구성된 제헌국회에는 남로당원은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국회개회후 두달도 안되어 대통령과 정부의 정책과는 정반대의 외군철수 긴급동의가 있어 국회는 휴회까지 하게 되었다.
10월 20일 아침이었다.
평상시와 같이 종로2가 근처에 있는 아지트로 가는 도중 미군헌병이 곳곳마다 서 있는 것이 이상했다.
아지트에서 국회에 관한 정보수집에 대한 회의를 하고 있는데 당중앙상임위원회와 연락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 『순천 14연대가 자연발생적으로 봉기했다』고 전했다.
자연발생적이라는 것은 당의 지시없이 제멋대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당은 총사령부인데 총사령부의 명령없이 제멋대로 봉기한다는 것은 당의 규율을 위배하는 것이며 당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문제였다. 정부는 이것을 반드시 남로당중앙에 둘러씌울 것이란 예감때문에 참석자 전원이 다 침울한 표정이었다. 너무나 돌발사태이기 때문에 어떠한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
아지트에서 나오니 벌써 어두웠다.
나는 마산 제15연대장 최남근과 강원도 인제방면에 가있는 대대장 강태무가 걱정되었다. 나는 물론 당군사담당 부문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당상층부에서 최남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장래 최남근이 국군의 중심인물이 될 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최남근은 그 당시 상당히 유명한 존재였다.
최남근은 만나본 적도 없고 그와 당과의 관계도 확실히는 몰랐으나 강태무는 너무나 잘아는 사이였다.
36년 동경에서 강태열과 한 아파트에 있을 때 태열의 동생인 중학 1학년생이 태무였다. 46년 강태열이 태무를 군사영어학교에 넣을 때 나에게 의논했던 적이 있었다. 강태열은 태무를 심산 김창숙의 보증으로 군사영어학교에 넣을 계획이었는데 나는 심산을 통해 김구의 보증으로 군사영어학교에 넣으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남로당에는 절대 접근시키지 말며 순수군인으로 발전시키도록 강태열에게 몇번이나 충고했다. 그후에도 강태열이 나의 충고를 지켜 강태무를 남로당에 입당시키지 않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김구 보증으로 입대시킨 것이 잘못이었다. 미군이나 이승만정보부에서는 강태무를 김구파라고 지목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기야 백범과 심산이 다 반이승만파가 되고보니 김창숙보증으로 군대에 들어갔어도 강태무의 전도가 불안할 것은 매한가지라고 생각되었다.
그 당시 국군내 파벌은 복잡했다. 일군계ㆍ만주계는 차치하더라도 남로당프락치ㆍ김구계등이 있었던 것 같았다. 순천 14연대 반란분자의 주동세력은 남로당 프락치지만 김구계도 동조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강태무의 배경전부가 위태롭게 느껴졌다.
나는 강태무를 친동생같이 여기며 그가 정치군인이 아닌 순수무장으로 자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나의 그에 대한 순수한 마음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다 당에 보고해도 강태무와의 관계만은 당에도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원래 군사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자면 일본과 반드시 한번 싸워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가 일본과 직접 전투를 벌여 독립하지 않으면 우리의 심리적 열등감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학졸업논문도 「전쟁학」을 택했으며 동시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조사연구했다.
그 당시 일본정치는 군부가 주도하고 있었다. 일본 육사를 졸업한 조선인장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구한말 최초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파견된 일군육군대좌 박두영과 그의 동기생 조선상업은행두치(은행장) 박영철이 당시 서울에 살고 있었다. 그외 이갑은 죽고 유혜열은 중국에 망명하고 있었다.
박두영은 동래사람이라 장인 소개로 그를 알게 되었다.
마침 그의 집은 혜화동 우리 누이집 바로 이웃이라 방학때 서울에 오게되면 반드시 그의 집을 방문해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염치없이 파고 물었다. 그들이 일본육사를 졸업한 해가 노일전쟁이 일어나던 해라 그들은 일본군에 지원해 장곡천호도장군의 휘하에 들어가 만주에서 러시아군과 싸웠다. 박두영은 그 때 칼을 맞아 이마에 큰 흉터가 있었다.PN JAD
PD 19900530
PG 05
PQ 04
CP HS
DO G
CK 03
CS C03
BL 599
TI 15개 공화국중 최대… 소 정치ㆍ경제를 주도/러시아공화국 개황
TX 칼리닌그라드주로부터 동쪽으로 추코츠키 반도까지 9천㎞에 걸쳐있는 러시아공화국은 인구 1억4천7백만명으로 소연방 15개 공화국중 최대공화국. 이에 따라 소련의 정치ㆍ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소련의 부존자원중 막대한 매장량의 석유ㆍ천연가스ㆍ석탄ㆍ다이아몬드ㆍ금 등의 4분의 3이 공화국내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집중매장돼 있어 소련전체 산유량의 90%,천연가스의 70%를 생산해 내고 있으며,세계최대의 원유수출국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대규모 제철공장과 원목생산단지를 보유하고 있고 핵원자로ㆍ대형기계ㆍ선박ㆍ굴착기ㆍ디젤기관차등을 생산하고 있는 산업강국이다.
우크라이나인등 슬라브계 종족들과 트란스코카서스 지방에 혼재돼 있는 다양한 종족집단,극동의 한인에 이르기까지 50여개 종족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85%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이 소련정치판도를 좌우하고 있다.
20년대들어 스탈린이 단기속성의 산업화정책을 추진한 결과 현재는 공화국 전체인구의 74%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66년 브레즈네프 당시 소련공산당서기장이 러시아공화국 공산당의 기능이 소련공산당과 중복된다는 명목으로 공화국공산당 지도부를 해체시킨 이후 89년까지 자체 공산당지도부가 없는 유일한 공화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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