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야기] 스와핑, 性에 탐닉하는 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3면

사회의 이면을 파헤쳐 특종 기사를 낚아야하는 기자들에겐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체득하는 불문율이 있다. 안개 속에 갇힌 듯 실체가 모호한 사건일수록 겉으로 드러난 정황 자체보다 결과적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지 동기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동기는 거의 예외없이 돈과 섹스다. 복잡해 보이는 사건도 따지고 보면 돈과 섹스에 욕심내다 빚어진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995년 11월 15일 오후 9시25분과 9시31분 미국의 하원의원 짐 챕맨과 존 태너는 수분 간격으로 백악관 집무실의 클린턴과 통화했다. 그들은 평소와 달리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다 서둘러 전화를 끊는 대통령에 대해 의아해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시간 클린턴은 통화 도중 르윈스키와 오럴 섹스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가지 사례일 뿐, 섹스를 둘러싼 스캔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이 없다.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알 만한' 사람들조차 이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불장난을 벌이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유사 이래 섹스가 제공하는 쾌락만큼 강렬하고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에선 인간이 느끼는 쾌락을 다행감(euphoria)에서 의기양양(elation).고양(exaltation).황홀경(ecstasy)까지 몇 단계로 구분한다. 후자로 갈수록 쾌락의 강도가 강하다.

다행감은 좋은 일이 있을 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강렬한 기쁨을 뜻하며, 의기양양은 기쁜 나머지 무의식적인 근육의 수축까지 동반되는, 이른바 환호성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보다 강력한 단계의 쾌락이다. 고양은 다행감과 의기양양의 쾌락에다 마치 자신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과대 망상적인 기쁨이 덧붙여진, 약간은 병적인 단계의 쾌락이다. 가난한 실직자가 재벌 회장이라도 된듯 행동하는 조증(躁症) 환자의 쾌락이 여기에 해당한다.

황홀경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지고의 기쁨으로 무아경(無我境)으로도 불린다. 인간이 황홀경을 느끼는 경우는 종교적 체험과 마약, 성교시 느끼는 오르가슴 세가지다. 종교적 체험은 보통 신앙심으론 불가능하며 마약은 부작용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된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가장 손쉽게 황홀경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은 오르가슴뿐이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오르가슴을 부여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섹스를 통해 자손을 낳는 이른바 생식의 의무에 충실해달란 뜻이리라.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80세 가까운 수명을 확보한 인간에게 섹스는 생식보다 쾌락의 수단으로 탈바꿈했다. 오늘날 생식을 위해서만 섹스를 해야한다는 톨스토이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섹스는 인간에게 마냥 탐닉해도 좋은 황홀경의 보고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섹스 역시 마약처럼 금단(禁斷)증상과 내성(耐性)이란 중독의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지닌다. 금단증상이란 자극을 중단하면 평소보다 훨씬 괴로운 현상이며, 내성이란 동일한 쾌락을 얻기 위해 필요한 자극의 강도가 점점 강해짐을 뜻한다. 그래도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성에 탐닉하면 어떻게 될까.

54년 미국의 생리학자 올즈와 밀너는 뇌 속의 쾌락중추인 중격핵에 전기 회로를 부착한 후 실험쥐가 스위치를 마음대로 켤 수 있도록 장치하고 관찰했다. 아니나 다를까 쥐는 스위치를 계속 눌러댔다. 무려 1시간에 7천여차례나 자극하는 쥐도 있었다. 결국 쥐들은 쾌락에 빠져 식음도 전폐하고 전기 스위치를 계속 눌러대다가 탈진한 나머지 하나 둘씩 죽어갔다.

최근 스와핑이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다. 정신의학적으로 스와핑은 성도착증 등 치료가 필요한 변태가 아니다. 현행법상 위법 행위도 아니다. 그러나 쾌락은 속성상 아무리 조심해도 탐닉하다 보면 중독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며 중독의 끝은 파멸일 수밖에 없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