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유해 송환 「평양의 유혹」/북방정책에 대항 대미 돌파구 겨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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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큰 진전 기대난… 한국선 관망
북한은 28일 한국전 당시의 실종미군 유해 5구를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통해 미국측에 반환한 것을 계기로 대미 유화ㆍ접근자세를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유해인도 행사에 몽고메리 하원원호위원장등 8명의 미 의원들이 참관한 것은 미국과 북한간의 사전절충에 의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북한측은 당초 미 의회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인수해 갈것을 요구했다가 미국측이 거부의사를 보이자 북경주재 대사관의 참사관급 접촉을 통해 몽고메리 미 하원원호위원장에게 편지를 전달하는가 하면 북한유엔대표부의 허종차석대사가 몽고메리의원을 직접 만나기로 했었다.
그러나 미국이 유해인도는 휴전협정에 따라 판문점 군사정전위를 통해야 한다고 고집하자 인도장소는 판문점으로 하되 미하원의원단이 여기에 온다는 선에서 절충됐다.
전인철북한 외교부부의장은 지난 15일 헬싱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유해인수를 위한 미 의회대표단의 방한이 미­북한관계개선의 돌파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바 있다.
또 김일성은 지난 24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회 1차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미국은 조선문제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당사자로서 조선의 통일을 실현하는데 마땅히 긍정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이 「원쑤 미제」를 강조해온 사정과 비교할때 평양방송으로 보도된 김의 이번 연설은 한 두대목만 빼고 대미 비난이 거의 없고 오히려 미국의 긍정적 역할을 기대해 북한의 대미 접근의사를 분명히 느끼게 했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우리의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에 외교위원회를 신설,국제외교통인 허담을 임명했으며 이번 대의원대회에선 외교위부위원장인 김용순을 당의 국제부장에서 국제담당비서로 승진시켜 미 의회외교를 강화하는 포석을 했다.
북한이 이처럼 대미접근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의 북방정책으로 동구와 소련의 기반을 잃고 비동맹외교가 위축되는 약점을 상쇄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북한은 미국과 직접 상대함으로써 각종 남북대화를 기피하는 그들의 본심을 감추려고 애쓰고 있다. 최근 워싱턴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최우진북한 평화군축연구소부소장은 『미국이 조선문제의 발생과 현재의 사태에 책임이 있고 그 해결에도 책임이 있다』고 해 소위 3자회담 논리로 국면전개를 연결시키려 했다.
미국도 지난 14일 터트와일러국무부대변인이 『이번의 유해송환 합의를 환영한다』며 유해송환이 미­북한관계개선의 진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터트와일러대변인은 『미­북한관계개선은 여러문제의 해결을 필요로 하며 이 가운데에는 북한의 테러중지 선언과 국제원자력기구 핵 안전협정조인이 포함된다』고 해 대북한관계의 원칙은 불변임을 밝혔다.
이렇게 볼때 미국과 북한은 피차 이번 유해송환을 통해 상대의 의중을 면밀히 점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한국은 북한의 속셈과 미국의 대처방식이 어떤식으로 접점을 찾을지 내심 관망하고 있다.
정부당국자는 북한이 항용 남북관계에서 구사해온 얄팍한 수를 유해송환을 계기로 미국에 던지고 있는데 그것이 먹혀들지 않는다고 판단 될때 던질 다음 수가 더 관심이라고 내다봤다.<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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