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출판사들 『단행본』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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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전집물 혹은 학습참고서류를 주로 발간하며 한국출판계를 주름잡아오던 전통의 대형출판사들이 최근 소규모 영세출판사들의 전유영역으로 치부돼온 단행본출판에 대거 진출하고있다.
이들 대형출판사의 단행본 진출은 종전 전집물출판사와 단행본출판사란 비교적 뚜렷한 양분상태로 유지돼오던 출판계의 묵시적 질서가 이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음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출판가에서는 이를 「독자훑기」를 위한 춘추전국의 새로운 전단을 여는「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행본분야에 뛰어든 대형 전집물출판사들은 한동안 호황을 구가하던 전집물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퇴조하면서 겪게된 상대적 경영침체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단행본에만 사활을 걸고있는 영세자본의 많은 소규모 출판사들은 이들의 진출을 자신들이 힘겹게 구축한 입지에 대한 「무자비한 침략행위」로 간주, 위기의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 단행본분야의 출판에 적극 뛰어들고있는 대형출판사로는 을유문화사·동아출판사·계몽사·시사영어사·웅진출판사·삼성출판사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전집물출판사라는 대중의 고정이미지 때문에 받는 불리를 극복, 판매 면에서는 꽤 고무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출판계의 제1 세대군을 대표하는 최고의 노포인 을유문화사는 전집물과 전문 학술서 간행에만 지나치게 집착, 변화하는 독자취향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데서 장기적인 사세침체가 비롯됐다는 자체 반성 끝에 88년부터 출판방향을 바꾸고 단행본 출간에 적극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1년 남짓 동안 처세훈이나 인생론에 주안을 둔 에세이 10종정도를 단행본으로 내놓았는데 이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커 89년2월 첫 책으로 선보인 필립 체스터필드의 『내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같은 것은 무려 50만부나 팔려나가는 일대 히트를 기록했다.
을유문화사 측은 『독자들이 읽어 유익한 내용에다 잘 팔릴 것이라는 확신만 선다면 가리지 않고 단행본을 펴 낸다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고 말하고 전집 혹은 시리즈는 물론 기획된 것이라도 종전과는 달리 낱권 판매방식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열어갈 계획이라고 밝히고있다.
학습참고서시장의 대부를 자임하는 동아출판사는 지난해 단행본부라는 독립부서까지 신설, 단행본출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와타나베 도시오(도변리부)의 두 저서를 우리 글로 옮긴 『5년후의 한국』 『서태평양 시대가 온다』 및 『우리의 명시』 『모래알 한가운데』
『메시지 49인』 『자본주의· 사회주의』등 6권의'단행본을 출간했으며 그중 세계경제체제와 이념의 발전과정을 만화형식으로 해설한 『자본주의·사회주의』는 불과 3개월만에 15만부 이상이 팔러나가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박석기 출판담당상무는 『동아전과를 보면서 자란 청소년세대가 어른이 돼 읽을 수 있는 마땅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단행본출간에 손을 대게됐다』며 일체의 반문화적 내용을 배제, 기존 단행본 출판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을 골라 금년 안으로 4O종 정도를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동용 전집물을 전문으로 발간해온 계몽사는 작년 11월 편집부 안에 5∼6명의 요원으로 구성된 단행본 개발팀을 만들고 이달초 첫 책으로 『김우중이야기』(상·하)를 낸데 이어 올해 안에 자연과학관련서적 20여종과 자체에서 작화 개발한 캐릭터물 (만화영화의 동물주인공 등) 2O여종을 출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시사영어연구』 『영어세계』등의 월간지와 『영어학습문고』『영한대역문고』등의 어문학습시리즈를 전문 출판해 온 시사영어사는 앞의 출판사들보다는 조금 빠른 85년 하반기부터 단행본출판을 시작했다. 경제·경영과 관련된 해외 베스트셀러 번역본을 주로 해 지금까지 50여종을 출간했고 그중 드러커의 『새로운 현실』 같은 책은 5개월만에 10판 5만부를 돌파하는 등 판매성과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고교학습물의 조직판매로 단기간에 괄목할 만큼 사세를 키운 웅진출판사도 작년7월 단행본팀을 신설, 단행본출판에 나섰으며 지금까지 『부모는 기름진 밭이 되어라』 『맴도는 아이 방황하는 부모』등 어린이·청소년 교육을 목적으로 한 「교육신서」 4종과 번역서들을 출간했다. 이 출판사는 박완서·송영·이경자씨 등 인기작가 6인이 참여하는 독특한 형식의 성장소설시리즈도 기획, 적어도 올 가을까지는 6권 모두 완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고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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