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없는 “두자리수”성장/예상밖의 고성장 분석(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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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건설등 주도 설비투자 활기/「경기회복」아직 불투명 건설은 과열 우려/수출ㆍ제조업과 균형맞출 정책전환 필요
추가적인 경제활성화대책이다,총체적 난국이다 하며 숨가쁘게 돌아가더니 이번에는 10.3%라는 두자리수 고성장의 기록이 나왔다.
우선은 전문가들조차 어이없어 할 만큼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일이고,좀 찬찬히 성장의 내용을 뜯어볼라치면 별로 내세울 것도 없어 결국 그리 반갑지 않은 경제성적표를 받아쥔 셈이다.
1년만에 처음인 모처럼의 두자리수 경제성장을 앞에 놓고도 정부가 선뜻 「경기회복」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장의 내용에 아직 확실한 자신이 없는데다 총체적 난국과의 머쓱한 부조화 때문이다.
1ㆍ4분기의 성장을 끌어 올린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해도 건설과 소비다.
건설도 공장용 건축(허가 면적기준 전년비 8.1% 증)보다는 주거용건축(78.2% 증)위주고,소비도 수출(상품수출 물량 0.1%증)이 아닌 내수(민간소비 11.9% 증)가 주도한 것이다.
물론 경기가 안 좋고 수출이 부진할 때는 건설투자와 내수확대로 돌파구를 찾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 78년 중동붐 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린 건설업(39.1% 성장)과 88년이후 계속 10% 이상씩 느는 민간소비가 두자리수 경제성장을 끌어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조업이 7.1% 성장했다지만 지난해 1ㆍ4분기의 제조업 성장이 1.8%로 극히 낮았던 것에 대한 「반등」을 감안하면 별로 대견스러운 것이 아니다.
성장 내용이 이러하니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도 없이 한쪽에선 쓸데없는 「과열」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올들어 건자재파동ㆍ인건비 상승이 계속된 끝에 결국 물가불안을 무릅쓰고 아파분양가를 10%이상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올 1ㆍ4분기중 내수출하 증가율이 시멘트 46.2%,레미콘 44.9%,합판 80%,철근 65%씩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일인 것이다.
한가지 반가운 것은 설비투자에 새살이 붙는 조짐이 나타난 것인데(18.6% 증) 2조원의 특별설비자금이 나가고 있는 만큼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정책대응이다.
한은은 불과 한달전 1ㆍ4분기의 GNP 성장률을 7.1%로 추정했으나 결과적으로 예측이 빗나갔다. 이점은 정부나 다른 민간경제연구기관도 마찬가지지만 결국 정부가 잘못된 경제전망을 근거로 국민경제의 틀을 짜고 있는 셈이다.
이승윤경제팀이 들어선 이후 발표한 4ㆍ4경제활성화대책도 따지고 보면 1ㆍ4분기의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마련한 것인데 차제에 부분적으로는 현 경제정책의 줄기를 다시 손봐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4ㆍ4대책이 주로 겨냥했던 제조업 투자와 수출회복의 효과가 하반기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할때 아무리 주택건설이 당면과제라 하더라도 분당ㆍ일산 등의 대규모 주택건설사업과 다른 정책목표와의 상충은 다시 심각히 검토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다시 절하되기 시작하는 환율변동과 관련,올 1ㆍ4분기의 경제성장이 「분수를 넘은 3년 호황」의 시작이었던 지난 86년 1ㆍ4분기때와 거의 똑같은 「외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1ㆍ4분기의 경제성장률이 85년 6.4%에서 86년에는 10.2%로 뛰었었는데,이번에도 89년 6.2%에서 1년만에 10.3%로 뛴 것이다.
그나마 86년에는 수출이 성장을 주도했으나 이번에는 건설과 내수가 그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내용상으로는 더 좋지 않다.
따라서 건설과 제조업,내수와 수출의 불균형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당면한 제1의 정책과제가 될 수 밖에 없고,결국 주택건설ㆍ자금배분ㆍ통화관리ㆍ환율운용ㆍ물가안정 등 모든 정책선택에 있어 앞으로 정부는 어려운 판단을 해야만 하게 됐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10.3%는 외형적인 고성장이 모처럼의 「경제하려는 분위기」를 다시 흩뜨리지나 않을까하는 우려다.
기업의 개술개발투자ㆍ구조조정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노사문제만해도 「경제가 어려우니 임금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하고 있는 판에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을 웃돌게 된다면 앞으로 근로자들을 설득하기가 어렵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겉으로 나타난 지표에 들뜨지 않고 산업구조조정이나 기술개발ㆍ부동산투기억제 등 경제에 새 살을 붙여나가는 작업에 꾸준히 힘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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