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18억 브라' 얄팍한 상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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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29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비스타홀. "순금과 다이아몬드로 만든 18억원짜리 브래지어를 가장 잘 어울리는 여성에게 무료로 증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20~40대 여성 2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앞서 이 행사를 주최한 중소 패션업체 G사는 예선(29일)과 본선(30일)을 거쳐 여성 한 명에게 초호화 브래지어를 선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순금 243돈과 다이아몬드 365개로 치장했다는 브래지어는 홀 중앙에 마련된 유리상자 안에 전시돼 있었다. 이를 본 참가 여성들은 "신데렐라가 구두를 신어보는 기분이 이랬을까"(22세 여대생) ,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44세 주부)라며 들뜬 모습이었다.

이날 예선에서 참가 여성들은 벗은 상반신을 브래지어로만 가린 채 심사위원들 앞에서 차례로 '심사'를 받았다. 가슴.얼굴.몸매.이미지의 4개 항목별로 각각 10점 만점의 점수로 매겨 선발한다는 게 G사의 설명이었다. 한 사람씩 앞.뒤.옆 모습을 보여주는 심사는 채 2분도 안 걸렸다.

꿈에 부풀어 있던 참가자들은 이날 오후 9시쯤 G사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참여 인원이 예상보다 적어 고가의 제품을 증정하기에는 부족했다. 11월 초로 본선을 연기한다"는 통보였다. 행사에 참가했던 여성들은 "사기극이 아니냐" "속옷만 입고 언론에 사진까지 찍혀 홍보에 이용만 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쯤 되면 '18억원이라는 가격이 진짜일까' '18억짜리를 공짜로 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가격에 대해 G사 관계자는 "가격 감정을 받으려고 했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포기했다. 18억원은 자체 추정가격이다"라고 해명했다. 한국보석감정사협회의 이상언 회장은 "보석의 값은 감정서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의 관심을 끌려는 독특한 방식의 기업 마케팅을 탓할 이유는 없다. G사의 주식은 장외시장에서 30~50원 사이를 오가다 '18억원 발표' 이후 주가가 두 배나 뛰었다. 대리점.총판 문의도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이번 이벤트가 어떤 식으로 결말 날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허영의 심리'를 노리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얄팍한 상술로 끝난다면 상당히 유감스러울 것이다.

김호정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