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 「얼치기음악인」양산 누구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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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작곡에만 매달려오다 지난 해부터 평론에 손을 댄 필자는 본의 아니게 끊임없이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월간 음악전문지를 통해 「솔직한 평」을 들은 당사자들이 앞으로의 음악활동에 참고하면 그 뿐인 것을 가지고 놀랍도록 흥분해 거세게 항의하고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 음악계의 평이 대체로 미사여구로 가득한 칭찬 일변도였던 만큼 모처럼 「솔직한 평」을 들은 음악인들이 꾸지람 한번 받지 않고 자란 귀염둥이가 처음으로 회초리 맛을 보았을 때처럼 노여워하고 기막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으리란 점은 넉넉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본인에 대한 「솔직한 평」이 아무래도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지면을 통해 떳떳이 반론을 펴는 것이 성숙하고 올바른 자세라 믿는다.
하기야 우리 음악계가 아직까지 실력보다 학력에 더 연연하고, 연주자가 제대로 된 연주회를 한번 열지도 못하면서 행세하고 이렇다할 작품하나 없는 작곡가를 받아들이며, 어엿한 논문이나 저서 한 권 없는 평론가들이 연주자의 후사에 값하고자 차마 평론이랄 수도 없는 글을 마구 써대는 현실이 별스럽지 않게 통하는 상황은 그 상당부분이 음악평론가들의 무책임한 정론활동에서 비롯됐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평론가들이 항상 두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모든 음악현장을 지키며 평다운 평으로 채찍질했더라면 우리 음악계가 지금보다는 한결 수준높은 연주현장을 가질 수 있었으리라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교수라는 명칭이 의심스러울 정도의 연주나 작품이 감히 어떻게 판을 칠 것인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무능력을 짐짓 눈가림하기 위해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사이의 높은 벽을 허물기 위한 시도」라는 구실로 터무니없는 연주무대를 꾸미는 교수가수(?)의 만용이 어떻게 매스컴의 각광을 받을 것인가.
또 해외유학기간중 국제무대를 주름잡았다는 음악인들이 귀국해서 대학에 자리잡거나 결혼하고 나면 1∼2년 후 향상은 커녕 귀국 당시보다도 뒤처지는 무사안일한 음악자세가 어찌 허용될 것인가.
이제라도 우리 음악계는 좀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이며 양심적인 비평의식을 바탕으로 한 평론풍토가 하루빨리 정착돼야한다. 정말 실력 있는 음악가가 인정받고 돈·학력·권위 등 음악외적인 요소들로 본색을 감춘 얼치기 음악인들이 자동도태되려면 평론가들이 치열한 자기반성과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로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어차피 우리 음악계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향상·발전시키기 위해 채찍질과 격려를 거듭하는 평론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 음악인들은 「솔직한 평」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음악세계를 더욱 기름지게 가꾸려는 자세가 아닌 듯하다.
더욱이 음악회는 갈수록 늘고있는데 비해 그에 대한 평을 담아낼 수 있는 지면마저 너무 적으니 우리의 음악평론이 제자리 잡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고개를 넘어야할 모양이다.
〈작곡가〉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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