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최조정 조정자자리 차지"|영도 예술론과 북한의 통치전략 대강연 세미나 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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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중앙일보사와 재단법인 대륙연구소(회장 장덕진)가 공동 주관하는 북한연구세미나가 지난 11일 각 분야의 북한전문가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김열규 교수(서강대)가 「영도 예술론과 북한의 통치전략-문화의 위상과 관련하여」라는 내용으로 주제발표를 했고 전문가들의 토론이 있었다. 다음은 주제발표요지. 【편집자주】
북한에서는 정치·경제·문화가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어 문화의 독자성이 절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북한에서 예술문학은 정치적 측면에서는 선전·선동, 경제적 측면에서는 노동고무라는 목적을 위해 각각 기능하고 있다.
북한예술론에서 공식적으로 선택된 높은 가치를 지닌 개념은 「선동」이다. 북한 예술인들은 「근로인민」의 일원이며 생산체계 내에서 당 통제하의 일관작업에 참가한다.
북한은 스스로「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예술의 나라」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예술의 높은 덕목으로 여겨지는 것은 예술의 정치화, 예술의 경제화다. 실제로 인민대중의 차원에서 보편화되어 있는 각종 공연예술은 지나치게 예술의 「효용론」에 집착하고 있다.
예술의 효용론이라는 점에서 북한예술은 ▲김일성 일가에 대한 끝없는 「찬미」▲봉건영주들과 일제와 미제국주의 및 남한에 대한 줄기찬 「전개심」▲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등의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찬미·적개심·낙관주의라는 서로 다른 감정이 무대나 공연공간을 휩쓸어 인민들의 감정과 정서가 한바탕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은 한국민속에서 흔히 나타나는 굿판을 연상케 한다. 굿판에서는 무당이 위협과 공포감, 비창과 눈물, 위안과 익살을 번갈아 사용해 굿청에 모인 삶들을 감정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는 일이 흔한데 북한의 예술문화에서 이런 특성이 두드러진다.
북한의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적 성격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미지메이킹」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김일성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은 한마디로 「메시아콤플렉스에 물든 문화영웅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는 북한사회에서 비로소 사람다운 삶의 길을 열어놓은 최초의 인물로 평가되면서 신흥종교에서 나타나는 「후천개벽」을 실행한 인물로까지 높여져 있다.
더욱이 정치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예술문화까지도 창조하고 영도한 창세기적 영웅으로 김일성이 설정됨으로써 「후천개벽」을 한 문화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의 전기는 사실주의적인 역사성과 함께 신화적 신비주의가 뒤엉켜 있다.
김일성의 신화적인 이미지는 고조선신화에서 비롯되어 고려왕조신화에까지 전승된 「백두산중심의 국토관」에 바탕을 두고있다. 또한 고조선 및 고구려신화에 나타난 할아버지·아버지·아들 3대에 걸친 계보와 각 세대가 맡고 있는 기능이 김일성일가 3대의 신화에 강하게 투사되어 있다.
여기에 백두산의 「정일봉」과 「김정일화」라는 상징조작까지 고려하면 김정일 계승은 필연적인 것으로 떠오르게 된다.
김정일 승계문제는 김일성 일가의 3대기적 신화체계가 기획되었을 때부터 은근히 추진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김정일이 영화·연극 등 예술문화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보였다는 식의 「이미지메이킹」은 탁월한 예술영도력을 지닌 「문화영웅상」의 차기 영도자를 예고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교시」는 정치에서는 이념의 지상과제가 되고 경제에서는 성취동기가 되며 예술행위나 공연에서는 「씨종자」가 된다.
북한에서는 전통문화도 김의 교시에 바탕을 두지 못하면 「현대적인 것」「창조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김일성이 개작에 관여하지 못한 전통은 수구가 되고 보수가 되며 시대적으로 뒤떨어진 퇴락물이 되고 만다. 이로써 북한과 민속은 본질적으로 「교시민속」 혹은 「당속」이 되고 말았다.
북한에서는 예술적 행사와 정치사회적 행사가 별로 구별되지 않는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대회나 대의원선거과정, 각종 당·정부행사는 축하「퍼레이드」로 예술화하고 순식간에 사회적「드라마」 혹은 정치적「퍼포먼스」로 변한다.
군사적 행사도 예외가 아니다. 어쩌면 북한주민의 일상생활 자체가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퍼포먼스, 정치적 퍼포먼스화한 것이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이 경우 김일성이 주연배우이자 지배적 연출가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작품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서사적 구실을 한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최종적·결정적 조정자의 자리를 김일성이 차지한다. 소설 속에서조차 김은 영도자의 자리를 확고하게 향유하는 셈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영도예술론」은 정치·경제·문화의 삼위일체, 「문화영웅상」을 지닌 영도자자질론 등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인민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찬미·적개심·낙관주의가 뒤섞인 감정의 폭풍우로 나타난다.
북한의 이 같은 예술문화적 경향은 주체사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체한 뒤에 체계화되어 지속된 것인데,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는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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