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의 최초시 『긴 숙시』첫 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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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 민족에게 가장 널리 읽히는 시인 소월 김정식(1902∼1934)의 최초의 시 「긴 숙시」가 발굴됐다.
그동안 우리 문단 및 학계에 알려진 소월 최초의 시는 1920년 3월 월간종합지 『개벽』5호에 실린「낭인의 봄」 「야의 우적」 「오과의 읍」 「그리워」 「춘강」 등 5편. 그러나 이번에 발굴된 「긴 숙시」는 1915년 창작, 1916년『근대사조』 1호에 발표돼 소월이 13세 때 이미 시를 창작한 것으로 밝혀져 그의 시적 천재성을 새삼 일깨운다.
「긴숙시」는 문학평론가 김성수씨가 북한의 「문학신문」 1966년6월3일자에서 발굴, 근간『문예중앙』여름호에 시전문과 함께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우리 문단 및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문학신문」은 주 1∼2회4면 발행됐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기관지로 50, 60년대 북한문단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던 신문이다.
「긴 숙시」는 시제 그대로 황폐화돼 가는 고향을 숙고하며 길게 쓴 산문시다.
『저는 눈물을 머금고 또 부르짖는다. 〈오 그대여 어떻게하여 이 경우에까지 이르게 하였는가. 죽어가는 문둥병환자에게 깨끗한 물법이 있지 아니한가. 말라가는 포도뿌리에 생 명 의 샘물이 있지 아니한가. 저들에게는 공포의 어두움이 포위한다. 전율할 고통이 침투한다. 그대여 그 암운을 헤치고 그 독기 있는 모래를 젖히고 그대의 전날의 빛, 영원한 그대의 빛을 비치여라〉라고.』
옥토였던 낙원이 맹렬한 광풍에 당해 독기있는 모래로 뒤덮인 사막으로 되었다는 것이 소년 소월이 읽어낸 고향의 현 상황이다. 즉 고향을 일제에 의해 황폐화 된 농촌, 나아가 민족의 한 상징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옥토를 되찾기 위해 피가 나도록 모래를 파헤치라는, 그래서 영원한 그대의 빛을 다시 비추라는 희망도 담고 있다. 때문에 「긴 숙시」는 소월 최초의 시이면서 그의 시세계 중 경향적 측면을 살필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한편 1966년 5월 10일부터 7월1일까지 「문학신문」에 12회에 걸쳐 연재됐던「소월의 고향을 찾아서」라는 기사는 소월 시의 배경이 되는 고향과 유족·친우·문단평·호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호 소월은 「소산에 뜬 달」이라는 뜻. 소산은 소월의 고향인 평북곽산 고향마을 뒷산 남산봉의 옛 이름이어서 「소월」은 「고향 산에 뜬 달」이 되어 언제나 고향을 지켜보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또 우리에게는 소월의 묘가 사망지인 평북귀산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기사는 고향 남산봉 기슭에 무덤과 묘비가 있는 것으로 전한다.
그리고 그 묘비에는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라는 우리에게도 애송되는 「초혼」의한 구절과 『김소월, 그대의 주옥같은 노래는 인민들의 가슴에 자랑 높이 울리고 향토와 인민에게 바친 애국정신은 조국 만년에 빛나리라! 』라는 조선작가동맹 명의로 된 헌사가 새겨져 있다고 전하고 있어 북한에서의 소월시에 대한 평가를 가늠케한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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