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60) -제3부 범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김원일 최연석 화
1919년 11월 초순, 늘 그늘지고 퀴퀴한 냄새로 들어찬 음습한 감방 안에는 벌써 초겨울이 찾아왔다. 높이 달린 환기통으로 가느다랗게 스며드는 햇살도 이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고 찬바람이 간단없이 밀려들어 모두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였다. 마루바닥도 써늘해져 엉덩짝으로 찬 기운이 스며들었다.
열세 명이 기거하는 남 2도 다섯 평 14호 감방에도 이제 물갈이가 제법 되어 3·1만세운동으로 피체되어 들어왔던 사람 중에 풀려난 자가 많았다. 6개월이나 8개월의 실형 선고를 받은 자는 물론, 1년형을 받은 자도 「반성」의 행형 성적이 우수하면 석방의 은전을 주어 출옥시켰던 것이다. 그러므로 열세 명 중에는 3·1만세운동과 관계없는 잡범이 아홉 명이었다.
오전 10시면 감방 안이 한가로울 때였다. 외역수(외역수)로 채석장에 출역 나간 자가 네 명, 외소반(외소반)로 채석장에 출역 나간 자가 두 명, 나머지 일곱 명의 수인은 어망 뜨기로 무료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병이 있는 자, 나이든 자, 몸이 불편한 자들이 남아서 그 일을 하고 있었다. 행형 당국은 수인을 놀리지 않고 그런 일감을 맡겨 일정한 작업량을 마쳐야 배식을 허락했던 것이다.
발소리가 저벅 저벅 들리더니 14호 감방 앞에서 멎었다.
『1023번, 나오라구.』
간수가 시찰구(시찰구)를 드려다 보며 말했다.
『석 선생, 좋은 일이 있나 봐요.』
절도범 설씨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석주율의 전력이 서당 훈장에다 3·1만세운동으로 들어온 자 중에는 형량이 높았으므로 모두 그를 우대하여 선생이란 호칭을 썼던 것이다.
『또 누이가 면회를 왔다면 목구녕 한번 호강하겠수다그려.』
아편밀매범 박 노인이 그물코를 뜨며 말했다.
『면회가 어디 아무 날이나 됩니까. 다른 일이 있겠지요.』
간수가 감방문을 열어주자, 석주율이 복도로 나섰다. 병감(병감) 생활을 끝낸 지도 달포, 그쪽에서 호출할 리도 없을 텐데 무슨 일인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햇살 잔잔한 환한 바깥으로 나오자 눈이 부셨다. 뜰 가장자리의 잡초는 이미 시들었고, 수양버들 줄기도 누렇게 갈잎이 되어 가고 있었다. 스산하게 부는 바람을 타고 흙먼지가 뿌옇게 일었다. 선화가 차입해 준 누비 속옷을 입었건만 그는 한기를 느꼈다.
간수는 석주율을 작업과 건물과 나란히 있는 계호실(계호실)로 주율을 데리고 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