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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에 빠진 코엘류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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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취한 샴페인의 뒤끝은 독하고 쓰렸다.

한반도를 "대~한민국"의 함성과 자부심으로 물들였던 '월드컵 4강'팀이 불과 1년 만에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백위권의 아시아팀에 연패를 당해 가뜩이나 뒤숭숭한 국민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지휘하는 축구대표팀은 22일 오전(한국시간)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2차 예선 E조 2라운드에서 홈팀 오만(FIFA 랭킹 1백2위)에 1-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은 후반 2분 정경호(울산)의 선취골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14분 김남일(전남)의 패스를 가로챈 알 누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후 수비진이 무너진 한국은 후반 19분 역전골, 42분 쐐기골을 얻어맞고 참패했다.

지난 20일 베트남(FIFA 랭킹 98위)에도 0-1로 졌던 한국은 3승2패로 오만(4승1패)에 조 1위를 내줬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

지난달 인천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한국은 베트남을 5-0, 오만을 1-0, 네팔을 16-0으로 꺾는 등 3연승을 거뒀다. 한국은 가벼운 마음으로 오만 원정에 나섰으나 중동의 무더운 기후와 내부의 자만심은 발목을 잡았다.

대한축구협회는 현장에 기술위원을 한 명도 파견하지 않았다. 김진국 기술위원장은 "1라운드를 통해 충분히 상대를 분석한 데다 3승을 올린 상황이라서 파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오만전에 대해 무엇을 분석했느냐는 질문에는 "올림픽 팀이 홍콩전에서 고전한 예를 들어 약팀에도 어려운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코엘류 감독에게 얘기했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K-리그 주중.주말 경기를 치르느라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뚜렷한 '동기'가 없었다. 흥이 안나는 경기에 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코엘류 감독은 느슨해진 선수들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다.

훈련기간도 짧아 불과 며칠간 손발을 맞춘 뒤 대회에 나섰다. 그러나 이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은 "더 이상 장기합숙은 없다. 국가대표 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팀의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코엘류 물러나야 하나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를 비롯한 네티즌 마당에서는 '코엘류 퇴진'을 외치는 소리가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코엘류가 지난 8개월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했고, 자신의 색깔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히딩크도 부임 초기에 '오대영'별명을 얻을 만큼 고전했지만 대전 상대가 체코.프랑스 등 유럽 강호들이었고,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코엘류와 달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퇴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히딩크가 노련하고 단호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장악한 반면 코엘류는 합리적이고 온건하지만 선수를 파악하고 통제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남미 색깔이 짙은 포르투갈 스타일'이 한국 축구에 맞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코엘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신우 SBS 해설위원은 "큰 실패를 맛본 감독은 얻는 것도 많은 법"이라 말하고 "다만 코엘류 감독으로서는 한국 축구의 특징과 문화를 더욱 깊이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축구협회는 조중연 전무가 귀국하는 대로 23일 오후 긴급 기술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 코엘류 감독의 경질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정영재.장혜수.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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