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미 동맹군' 시골학교서 영어 봉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 2사단 소속 앤서니 로차 아르나 병장(맨 오른쪽)이 얼굴 표정을 이용해 어린이들에게 영어 단어를 가르치고 있다. 포천=변선구 기자

"레이즈 유어 핸드(Raise your hand.손 들어 보세요)."

27일 오후 2시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초등학교 1, 2학년 교실. 학생 25명이 미군으로부터 간단한 영어 회화를 배우고 있다.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미군의 영어 발음을 그대로 따라한다. 이때 옆에 있던 한국인 카투사(미군과 함께 근무하는 한국군) 한 명이 영어의 뜻을 설명해 준다. 이어 학생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배운 영어를 미군이 말하면 행동으로 옮기며 발음도 따라하는 놀이를 즐겼다. 미군의 강의와 카투사의 통역으로 진행된 영어 공부는 50분 동안 계속됐으며 학생들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수업에 열중했다.

2학년 심승호(8)군은 "키가 큰 미군 아저씨가 재미있는 동작을 하며 영어를 가르쳐 줘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좋아했다.

봉사활동에 나선 앤서니 로차 아르나(38) 병장은 "동두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주변의 한국민과 지역사회에 대해 잘 몰랐다"며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민들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지역사회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교생이 68명에 불과한 농촌마을 초등학교에서 미군이 영어 원어민 교사로 처음 나선 현장의 모습이다. 미 2사단 소속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소속 미군 병사 다섯 명, 카투사 네 명이 이날부터 영어교육 자원봉사에 나섰다. 학교 측은 이날 미군과 카투사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수업 시작 전 급식실에서 전교생과 마을 주민 1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환영식을 열고 감사의 인사말과 꽃다발을 전했다.

1.2학년, 3.4학년, 5.6학년 등 3개 반으로 운영되는 영어교실은 미군 병사와 카투사가 짝을 이뤄 자체적으로 개발한 교재를 이용해 가르쳤다. 이들은 12월 20일까지 매주 수요일 이 학교를 찾아 하루 50분씩 영어를 무료로 가르치기로 했다.

미군들은 또 연말에는 학생.교사.학부모 등을 부대로 초청해 견학을 시켜주기로 약속했다.

이 학교 이호연(55) 교장은 "미군들은 학교 인근의 미군종합사격훈련장(영평사격장)으로 인해 지역주민과 학생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는데 미안한 마음에서 이 같은 봉사를 벌이고 싶다고 알려와 기꺼이 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달 영어특기적성교육을 담당할 교사 모집에 아무도 응모하지 않아 학생들의 영어교육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는데 미군들의 도움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원어민 교사가 확보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카투사 이정범(25) 상병은 "현지민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는 미군의'굿 네이버(Good Neighbor)' 프로그램에 따라 봉사를 자원하는 미군과 카투사가 나왔다"며 "어린 학생들이 뛸 듯이 좋아하며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봉사활동을 자원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앞으로 미군들과 협의해 보다 효과적인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포천=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