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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행복한 한 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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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32강전 하이라이트>
○ . 서봉수 9단 ● . 장웨이 5단

승부의 세계는 한 살이라도 어린 쪽이 유리하다. 같은 실력이라면 선배가 후배보다 승률이 낮게 나온다. 심리적 요인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후배는 왠지 부담스러운 존재고 그 때문에 실력 발휘가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연소자(17세)인 장웨이(張維) 5단과 최고령자(53세)인 서봉수 9단의 대결에선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부담스러운 쪽은 오히려 장웨이였던가 보다. 바둑판을 지배하는 정신적 흐름에서 서 9단은 시종 장웨이를 압도했다.

장면1(154~159)=서 9단이 154로 쑥 나간 수는 일견 끝내기로 보인다. 바둑이 팽팽하다면 이 수를 한 번쯤 의심해 볼 수 있겠지만 고통스러운 비세가 이어지며 이미 뒷머리가 뜨끈뜨끈해진 장웨이는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는 155로 기어나가 반상 최대의 끝내기를 한다. 159까지 한 점 잡으며 A의 곳을 수비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서 9단의 시선은 아까부터 상변 흑을 훔쳐보고 있다. 이곳에 무슨 수가 있을까.

장면2(160~164)=놓이고 보니 간단했다. 160 쭉 뻗는 한 수로 이곳 흑이 그만 저승길로 가고 만 것이다. 오랜만에 세계대회 본선에 나섰으니 한판은 꼭 이기고 싶다던 서 9단이었다. 그는 아마도 이 회심의 한 수를 두면서 몹시 행복했을 것이다. '참고도' 흑1로 두면 궁도가 굉장히 넓어 보이지만 그건 착시현상일 뿐 백8까지 간단히 잡히고 만다.

장웨이는 그러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듯 이후에도 20여 수를 더 버티다가 항복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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