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대통령」 한계 절감/청와대 특명사정반 가동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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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못잡으면 6공끝” 연말까지 시한부/통치권차원 윗물부터 정화/정가냉각·「단칼」후유증 우려
노태우대통령이 11일 청와대안에 특명사정반을 설치토록 한 것은 집권후반기의 통치기반 보전을 위해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노대통령은 자신의 상을 전임 권위주의 대통령들과 대비시켜 민주적 대통령으로 부드러운 모습을 심는 데 무척 신경을 썼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은 엄해야 하고 청와대가 「힘쓰는 곳」이란 기존 관념을 불식시킨다는 취지에서 의자배치를 원탁으로 하고 청와대기구를 축소개편하는등 여러가지 외관상 변화를 시도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전임대통령시절에 있었던 사정·법률수석제를 없애 민정수석에 통합시키는 한편 사정업무는 국무총리실에 제4조정관을,감사원에 5국을 신설해 위임했었다.
그랬던 노대통령이 이번에 특명사정반을 설치해 감사원·총리실의 사정기능을 청와대에 다시 집중시킨 것은 자신의 국정운영에 시행착오를 시인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사정기능을 하부기관에 위임하고 자신은 「웃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어서는 효율적인 국정운영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새 각오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는 최근의 난국 원인이 경제적 요인에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전반적인 사회기강해이에 있으며 그 중에도 공직사회의 부패와 무사안일이 심각한 지경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아무리 난국극복을 하려해도 현재의 공직사회 분위기로는 정책집행이 어려우며 먼저 이같은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실패할 것이란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특명사정반의 활동시한을 연말까지로 잡은 것은 노대통령이 5·7특별시국 담화에서 정치·경제·사회안정을 연말까지 이룩하겠다고한 대국민약속시한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처럼 시한을 정한 것은 노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처럼 강한 지도자로 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지 못해 칼을 뺐지만 본 바탕은 민주화에 두고 있음을 강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청와대 참모들은 단임대통령의 집권후반기를 끌고가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가 마지막 승부수이며 6개월간 전력투구해서 안되면 끝장이고 성공하면 계속 고삐를 잡겠다는 속셈이다.
이에따라 특명사정반의 활동범위는 공직자사회의 고질적인 비리뿐 아니라 무능·무사안일과 정치인·사회지도급 인사의 호화사치및 향락생활등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동산투기,각종 개발계획 누설에 의한 투기조장,청탁등 직무와 관련된 것은 물론 개인의 공사생활 문란등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모든 분야를 집중적으로 내사하고 적발할 방침이다.
부동산투기문제와 관련해서는 청와대경제수석실에 설치되어 있는 「부동산대책 특별점검반」과 상호 팀웍을 이뤄 강력한 대책과 조사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부동산문제는 워낙 민감한 문제인데다 자칫 잘못하면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정부내 모든 정보기관으로부터의 정보를 입수하고 철저한 내사활동을 벌여 확실하게 투기의 근원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기업이나 개인이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부동산을 위장 매입형식으로 과다하게 보유하고 탈세를 일삼는 현실을 근절하지 않고는 투기 자체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세무사찰의 수단까지 동원해 그 반사회적 행태를 공개하고 중과세로 다스리겠다는 각오다. 정부가 11일 상습투기자 1백68명의 명단을 공개한 것은 이같은 방침의 예고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명사정반의 구성이 청와대사정비서관을 반장으로 해 청와대민정비서실 사정요원과 국무총리실 4조정관실,감사원 5국,치안본부조사과등 사실상 정부내 모든 사정기관이 망라됐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같은 특명사정반의 활동범위를 짐작케 한다.
정부는 이미 작년 두차례에 걸쳐 3급이상 고위공직자 9백80명에 대한 공사생활 내사를 마쳐 그 기본자료를 비치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기업의 부동산 매입을 사후에 승인해준 이병선한일은행장의 사표와 4개 시중은행장에 대한 경고,특정 단체로부터 돈을 받아온 건설부 서병기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의 면직등은 정부가 그동안 수집해 놓은 비리자료에 따라 취해진 것으로 앞으로 정부가 취해나갈 조치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이같은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는 공무원·재벌기업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한파를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그동안 특수신분으로 보호받았던 국회의원 등도 이번 사정활동의 범주안에 들어갈 것이 확실해 특명사정반의 내사및 처리결과에 따라서는 정치권자체가 큰 회오리에 말려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같은 갑작스런 분발(?)에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다.
사정당국이 과거조사기록을 토대로 하나하나 조치를 취할 경우 지금까지는 뭣하고 있었느냐는 의문과 함께 정치적 동기를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벼락치기 「단칼」뒤에는 억울한 희생자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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