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줄것엔 소극적 얻을것만 신경/노대통령 방일앞둔 동경의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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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교포 지위」개선 등 “외화내빈”/한국고속전철 참여설 나돌아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일정이 확정됨에 따라 일본이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와 3세 이후에 국한된 재일한국인 법적지위 개선을 1,2세까지 확대적용하는 문제가 한일간의 새로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일본정부는 지난달 30일 열렸던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재일한국인 3세 지위문제에 대한 원칙에 합의를 본 것으로 재일한국인 법적지위문제가 말끔히 해결된양 치부했으나 이 문제에 대한 한국 국내 및 재일한국ㆍ조선인의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식민지지배에 대한 강도높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고민 중이다.
사실 일본은 식민지 지배나 전쟁책임에 대한 사과에 아직까지도 애매모호한 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언론까지도 50년전에 있었던 카친숲 학살사건을 놓고 최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폴란드에 대해 사과성명을 낸 것과 비교하여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자세가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총리가「사과」검토
「일본의 사죄표명」은 오는 24일 낮 노대통령이 일본에 도착한 직후 일왕이 왕궁에서 회견을 하거나 이날 밤 예정된 만찬석상에서 만찬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 헌법하에서 일왕이 조선통치의 책임자였으나 현재는 상징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아 발언에 한계가 있음을 이유로 들어 일왕대신 가이후(해부)총리가 보다 구체적인 「사죄표현」을 한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왕은 84년9월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 이미 한차례 대 한국 사죄표명을 한 바 있다.
당시 히로히토(유인)일왕은 궁중만찬회 석상에서 『금세기 한시기에 양국사이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음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감」이라는 말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일간에 큰 견해차가 있는데다 한국국민 감정이 이를 진정한 사과표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왕이 그간 몇차례 과거에 대한 사죄표명이 있었으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은 지난해 4월 방일한 리펑(이붕) 중국총리에게 『근대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음에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미국ㆍ중국과 달리 한국에 대해서는 창씨개명까지 강요한 점에 비추어 한국인의 감정의 강도가 다르다』고 인식하고 있는 만큼 일본정부가 과연 「혁명적인 자세전환」을 할지 주목된다.
재일한국인 법적지위문제도 간단치 않다.
재일동포들은 양국 외무장관이 합의한 사항이 「3세이후」에 국한된 것에 강한 불만을 느끼고 있다.
○1ㆍ2세도 해결요구
이들은 노대통령의 방일때 1,2세 문제까지 완전한 해결의 언질을 받아 놓지 않으면 또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절박한 심정에 놓여있다.
이 문제에 대해 하세가와 신(장곡천신) 법무장관이 8일 1,2세도 3세의 법적지위와 동등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혀 다소 희망적인 기미가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구체안이 제시되지 않아 재일동포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영화시장 개방 희망
사실 일본정부는 외무장관회담 합의에 따라 관계법개정작업에 들어 갔으나 관계부처간에 이견이 여전해 그나마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의심스럽다.
일본정부는 지문날인 대신에 외국인등록을 가구단위로 기록하는 새로운 호적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법무성이나 경찰청이 신원확인 방법으로 미흡하다는 이유로 사진으로 보강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등 대체수단 강구에 여전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소극적 자세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이 기회에 한국으로 부터 얻어낼 이득에 대해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일본영화의 수입을 개방하고 중부고속전철에 일본의 참여가 결정된 것 같은 뒷얘기도 무성하여 과연 노대통령의 방일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재일동포 사이에 퍼져있는 점을 정부가 유의해야 할 것 같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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