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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만들기] 34. 지하철 1호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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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북지사로 있다가 1970년 4월 서울시장 발령을 받고 상경하던 양택식씨는 차 안에서 시장 재임 중에 지하철을 건설하겠다고 결심했다. 경북지사로 가기 전에 철도청장(66~67년)을 지낸 梁시장은 철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서울 지하철 건설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었다.

시장 부임 한달 뒤 梁시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첫 시정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지하철건설본부 설치 등 서울 지하철 건설을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梁시장의 지하철 건설 구상을 전해들은 김학렬 경제부총리의 첫 마디가 "촌놈이 알지도 못하고 건방지게…"였다고 한다. 거액의 외국차관을 필요로 하는 사업은 대통령에 앞서 경제부총리에게 보고하고 경제 관련 장.차관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하는 사항이었다. 이런 기본적인 절차를 도지사 출신 시장이 알지도 못하면서 건방지게 처신했다는 게 金부총리의 노여움을 산 이유였다. 며칠 뒤 청와대에 들어간 金부총리는 "서울에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합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우리 경제는 긴축을 지속해야 하며, 인구가 급증하는 서울에 지하철 건설 등 대규모 투자를 하면 인구 집중이 심화된다"고 강조했다. 金부총리의 주장을 들은 朴대통령은 지하철 건설 결심을 망설였다. 朴대통령이 시장과 부총리의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이후락 주일대사가 일시 귀국해 청와대를 방문했다. 朴대통령은 서울 지하철 건설을 둘러싼 시장과 부총리의 의견을 설명한 뒤 李대사의 견해를 물었다. 이에 대해 李대사는 "미국.유럽 대도시에는 대부분 지하철이 있으며, 서울도 지하철 건설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마침내 朴대통령은 지하철 건설을 결심했다.

70년 6월 梁시장은 철도청 기술진의 핵심이었던 김명년씨를 스카우트해 와 직원 16명으로 서울시 지하철본부를 신설했다. 넉달 후 金부총리는 백선엽 교통부 장관.梁시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지하철 및 수도권 전철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9.8㎞ 구간에는 지하철을 건설하고 ▶서울역~인천▶서울역~수원▶용산역~성북 구간은 기존 철도를 전철화해 지하철과 연결한다는 내용이었다. 종로~청량리 구간 공사에는 지상에서 땅 속으로 파들어가는 개착식 공법을 썼다. 터널식으로 파는 것보다 공사비가 적게 들고 공사기간도 단축된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교통 혼잡을 초래해 시민에게 큰 불편을 줬다.

난공사 구간도 여러 군데 있었다. 남대문과 동대문 공사구간에는 진동으로 인한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수입 콜크로 방진벽을 만들었다. 거의 90도로 꺾이는 광화문에서 시청쪽 방향 공구에는 특수공법이 도입됐다. 서울 지하철 건설공사는 우리나라 토목기술을 크게 향상시켰다. 梁시장은 지하철 건설 기간 내내 공사현장을 누비고 다녀 '두더지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하철 1호선 개통식은 74년 8월 15일 광복절로 정해졌다. 이날 조간 신문들은 일제히 지하철 개통을 축하하는 사설과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개통식은 예정됐던 각종 축하행사가 모두 취소된 가운데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동포 문세광이 쏜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희생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광복절 행사 주관자인 梁시장은 시장직을 사퇴했다. 현재 1~ 8호선 총길이 3백40㎞가 넘는 지하철이 건설돼 있는 서울은 이 부문에서 도쿄(東京).뉴욕.런던에 이어 세계 4위를 자랑하고 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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