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특별한 개그'…신동엽 매력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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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충전이라기보단 아예 방전한다는 기분으로 한 6개월쯤 푹 쉬고 싶어요."

최고 인기의 개그맨이자 MC인 신동엽(32)이 당분간 방송을 중단한다. 비록 SBS의 'TV동물농장'은 계속 맡기로 해 전혀 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절정기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가 갑작스레 방송 중단을 선언한 것은 다소 의외다. 쟁반노래방으로 화제를 모으며 오락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인 KBS-2TV 해피투게더의 촬영이 있던 지난 20일, 마지막 녹화를 마친 그를 만났다.

"1, 2년 후엔 제 바닥까지 몽땅 다 들통이 날 것 같아 잠시 숨고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특별한 계획은 없고, 여행 다니고 학교 동창도 만나고 그럴 예정"이라면서 "91년 데뷔 이후 대마초 사건으로 10개월가량 떠난 것을 빼곤 방송을 쉬는 건 처음이죠. 동물농장이야 2주에 한번 정도 촬영하니 별 부담도 없고 돈줄이 아예 끊겨도 안되잖아요"라고 시원섭섭함을 내비쳤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손짓하며 눈가에 가득한 장난기에 푸른색 교복을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고삐리'같다.

하지만 현재 그의 영향력은 단순한 인기 연예인 이상이다. 그의 '개점 휴업'소식에 SBS는 '헤이! 헤이! 헤이!'와 '맨Ⅱ맨'을 곧바로 없애기로 했다. 신동엽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이를 극복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단다.

혹자는 그가 '특A급 대우'(그는 회당 7백만원의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상으로 몸값을 올리기 위해 방송을 쉰다는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지만, 이 정도면 분명 '연예 권력'이다. '다음 개편 때 신동엽을 잡느냐에 따라 방송 3사 예능국장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방송가에 돌 정도다.

무엇이 그를 이 같은 정상의 자리로 이끌었을까? 우리 코미디 역사를 돌아봐도 신동엽의 웃음 코드는 독특하다. 60, 70년대 배삼룡과 서영춘의 슬랩스틱 코미디로부터 출발한 한국 스타 코미디언의 계보는 80년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바보 연기로 자신을 희화화한 이주일과 심형래로 그 맥을 이어갔다.

90년대 들어선 주병진과 이경규 등 '면박 주기'개그가 한창 유행하더니 최근엔 심현섭으로 대표되는 '개인기'가 웃기기의 절대조건인 양 자리잡았다. 그런데 신동엽은 그 흔한 개인기 하나 없으며, 톡 쏘는 입담으로 출연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더더욱 없다.

그의 인기 비결로는 우선 연기력이 꼽힌다. 신동엽이란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은 90년대 후반 히트한 MBC 청춘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다. 그는 이 시트콤의 타이틀 롤을 맡아 비굴하면서도 속물적인, 그러면서도 우리 내면 어딘가에 자리잡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간형을 보여주었다. 이는 '영웅'과 '당위성'으로 똘똘 뭉친 이전의 주인공과는 분명히 차별화된 캐릭터였다.

그의 또다른 인기요소는 '배려'다. 해피투게더 이동희 PD는 "좀 재미없는 상황이 닥치면 이를 억지웃음으로 넘기려는 유혹이 있게 마련이죠. 그러나 이럴수록 신동엽은 소외된 출연자들에게 기회를 부여해 자연스럽게 위기를 넘기는 능력이 탁월합니다"라고 말했다.

신동엽과 공동진행자인 이효리는 "동엽오빠가 있었기에 나의 어눌함이 오히려 매력적인 요소로 포장될 수 있었다고 봐요"라고 토로했다. 신동엽은 "누군가를 바보로 만들면 그 순간엔 웃지만 돌아서면 씁쓸한 것이 인간의 천성이지 않을까요. 당장 박장대소가 터지진 않지만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하는 개그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신동엽식 웃음을 관통하는 '연기력'과 '배려'란 두가지 요소는 농아인 그의 맏형과의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을 봐도 코미디나 가요 프로그램은 안 봤어요. 듣지 못하는 형이 소외감을 느낄까봐 온 가족이 신경쓴 거죠. 제가 표정 연기가 풍부하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형과 대화하려고 형의 얼굴을 유심히 관찰해 온 덕분일 거예요."

그의 매니저인 김동호씨는 "4년째 같이 다니지만 지금도 하루에 다섯 마디나 할까요"라며 그가 무척이나 내성적이라고 전한다.

SBS의 한 PD는 "보통 진행자들은 방송 끝나면 곧장 가버리죠. 그는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 녹화 끝날 때마다 PD들과 술자리를 가져요. 온통 일얘기 뿐이죠. 방송을 할 때도 이렇게 멘트를 해야 편집이 잘 되겠다는 것까지 고려해요. 진행자라기보단 PD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죠"라고 말한다. 어떤 분야건 '천재성'과 '자질'만으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글=최민우,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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