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재벌 2세 단골' 딱지 뗀 김성수 MBC '누나'서 돈 없는 시간강사 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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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사진=변선구 기자]

이 남자, 의외로 수다스럽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날 것 같은 근육질에, 1m85㎝라는 큰 키가 무색하게 "다들 나보고 '동네 언니' 라던데"라고 허허 웃는 품새라니.

트렌디 드라마에서 완벽남으로 주로 출연했던 배우 김성수(33.사진)는 "똑똑하고 잘나가는 재벌 2세 역할 이제는 못하겠어요. 연기하는 나도 지겨운데 시청자는 어떻겠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20대에는 저도 정우성씨 같은 '청춘스타'를 꿈꿨어요. 그러나 소속사와 문제가 있어 활동을 주춤하게 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접어지더군요. 이제는 60살까지 연기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욕심을 접으니 길이 보이고 서른이 넘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는 것. 자신의 연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지만, 계단 밟아 올라가듯 차근차근 보여줄 생각이란다. 그래서 이번에 선택한 것이 김정수 작가가 쓰는 가족 드라마 '누나'(MBC)다. 여주인공 승주(송윤아 분)를 일편단심 바라보고, 집안이 몰락한 그녀를 든든한 오빠처럼 지켜주는 남자 건우로 나온다.

송혜교를 사이에 두고 비와 줄다리기를 하던 '풀하우스'의 민혁 등 이전 역할과 다른 점이라면 언제나 말끔한 양복 수트 차림에 외제차를 몰고 다니던 그가, 이번엔 까만 가죽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다니는 돈 없는 시간강사로 분한다는 것.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여성들의 '이상형'에 가까운 역할이다. 그래도 김성수는 "저 많이 변했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드라마 속에서)아버지와 어머니.동생.할아버지까지 가족이 처음 생겼다"라고 밝히는 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완벽한 외모에, 미국 유학생활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자기 사업까지 경영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순정만화' 속 인물은 아니라는 이야기. 자신으로서는 '생활밀착형' 연기에 처음 도전한 셈이라고 했다.

"오현경.박근형.김자옥 선생님이 말로 가르쳐주시지는 않아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돼요. 자연스러운 연기, 다른 사람과 어우러지는 연기 같은 거요. 이번에 아무것도 못 배운다면 전 바보겠지요."

하긴 그가 특유의 '기름기'를 빼려고 노력한 흔적은 역력하다. 집에서 입던 트레이닝복을 굳이 촬영장으로 들고나와 입고, 머리가 좀 부스스해도 개의치 않는다. 집안에서도 '박사님'으로 떠받들여지는 모범생 건우와 감정이입을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고도 했다. 그는 "건우처럼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여자친구를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는 남자가 어디 많겠어요"라며 "사실 어릴 때 노는 걸 좋아해서 백수나 확 풀어지는 역할을 잘할 수 있는데 그런 건 다 주인공이 맡더군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번 드라마 때문에 자신의 가족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는 그는 "밖에서는 말을 잘해도, 집에서는 참 무뚝뚝하다"라며 잠시 말을 멈췄다. 두 살 터울의 누나는 수녀가 됐고, 부모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고 했다. "술을 한번 마시면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며 터프함을 드러내고, "모범생은 절대 아니었다"라며 극구 부정하는 그지만, 건우의 건실함도 묻어나는 것이 사실.

"바빠지니까 여자친구랑 통 못 만나요. 그런데 그 친구가 유학을 2년 갔다온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정도도 못 믿고 안 보내주면 그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는 거겠죠."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는 순간, 브라운관 속에서 감성 넘치는 연기를 펼치던 김성수는 평범한 30대 싱글로 돌아왔다.

글=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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