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우리나라는 고집불통의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나라가 시끄럽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같은 국가 정책, 층간 소음으로 살인이 벌어지는 사회 갈등, 부부와 부모.자식이 대화하지 못하는 가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올해 한국은 불통(不通)의 사회다. 각자의 목소리는 있지만, 합의나 협상은 없다. 자기 입장만 주장하는 진보와 보수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으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여력이 없어 보인다.

정보의 홍수시대, 그 정보의 가치 판단이 중요한 지금. 어느 때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다. 매 순간이 결정과 판단의 순간이다. 그 판단은 작게는 가정의 행복, 크게는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혼자의 생각보다 소통을 통한 다수의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듯하다.

왜 우리는 소통하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듣고자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오직 나의 이야기만 전할 뿐 상대방의 얘기를 이해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내 주장을 많이 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기는 척도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스피치를 잘하는 것, 나아가 설득을 잘하는 것은 듣는 데서 시작한다.

둘째, 우리의 경직되고 이분법적인 사고 때문이다. 일본 강점 시기와 한국전쟁 같은 우리의 역사적 흐름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우리를 양 극단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진보와 보수만 있을 뿐 제3의 대안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침묵의 나선 이론처럼 다수의 의견이란 미명 아래 우리는 양 극단을 강요당한다. 그 틈바구니에서 나의 의견은 매몰되고 여론이라는 흐름에 나를 맡기게 된다.

셋째, 스피치와 토론에 대한 교육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스피치를 한다는 것은 인지적으로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도 수많은 학원이 있지만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극단적 방법만 제시할 뿐 이론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더 심각한 것은 말을 통한 의사소통을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근대 산업혁명은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집의 공간이 커지며 거실이 생겼다는 점이다. 자신의 공간에서 생활하다 거실에서 의견을 나누고 대화하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가정에서의 대화를 바탕으로 사회적 논의가 생기고 결국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이 발생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대화나 토론의 룰이 없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승복할 줄 모른다. 원칙이 없는 논쟁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뿐이다.

넷째, 열린 스피치의 역할 모델이 없다. 일방향적 스피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넓히는 스피치, 단지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빛과 감성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스피치, 그리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스피치. 우린 가정과 사회에서 이런 스피치를 들어본 지 오래인 것 같다.

스피치는 인지적 자각과 반복적 경험이라는 두 축을 통해 향상된다. 방향성 없이 막무가내로 훈련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론적으로 알고 있어도 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서 체계적인 스피치 교육이 필요하다. 가정.직장.사회에서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바로 나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 출발은 열린 마음을 가진 경청이다. '대화'를 통한 진리 추구를 강조했던 플라톤의 가르침은 현재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하다. 불통(不通)의 시대, 열린 스피치를 희망한다!

김은성 K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