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기업연합 세계「경제지도」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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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얼마 전 화제를 끌었던 어느 기업가의 자전적 에세이(『사랑과 비즈니스에는 국경이 없더라』) 의 제명처럼 최근 국경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국기업간의 업무제휴·합법·협력관계의 강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때는 서로를 굴복시키기 위해 사소한 정보의 교환조차도 금지했던 이들 기업의 업무협조 움직임은 국제경쟁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이러한 이국기업간 업무제휴·협력 관계의 강화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회사는 주로 일본 및 서독계 회사들이다.
최근 서독의 다임러 벤츠사와 일본의 미쓰비시(삼능) 그룹은 우주· 항공· 자동차·전자·무역분야에서 양사의 협조관계를 강화시키기로 했다고 발표, 세계를 경악케 했다.
지난 3월7일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두 그룹은 우주·항공·자동차·전자 등 첨단기술분야에서 앞으로 협력을 통해 공동생산 및 판매제휴를 해나갈 방침이다.
일독 연합으로까지 불리는 벤츠와 미쓰비시의 이와 같은 제휴관계선언은 현재 관계 전문가들로부터 세계산업지도를 바꾸어 놓을 엄청난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두 그룹간의 제휴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미국계 회사들은 대책마련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 대책마련 부심>
그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첨단기술력의 마지막 보루로서 기술력우위를 자랑해오던 우주·항공분야에서 벤츠의 기계기술과 미쓰비시의 전자기술이 결합할 경우 상당한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제휴관계가 없던 양사의 급작스러운 제휴관계선언은 ▲미쓰비시 입장에선 점점 극심해져가고 있는 일본계기업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92년 통합을 앞둔 EC 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벤츠입장에선 점점 시장이 확대되고있는 아시아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획기적 기술향상>
전문가들은 현재 벤츠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고급승용차 및 트럭분야의 관련 기술이 미쓰비시로 이전되고 미쓰비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자동차용 전자기술분야가 벤츠로 이전 될 경우 양사는 자사제품의 전자· 기계적 성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미쓰비시의 입장에선 지금까지 국내 경쟁사인 닛산 (일산) 이나 혼다 (본전)에 비해 열세였던 상황을 크게 호전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전자산업 부문에서도 미쓰비시의 반도체기술이 반도체의 불모지였던 벤츠의 전자사업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 확실시되며 벤츠계열사인 AEG사가 확보하고 있는 가정용 전자기기시장의 시장 점유율이 미쓰비시의 대서구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겁내고 있는 분야는 이러한 가전·자동차·반도체 관련산업의 업무 협조가 아니라 우주·항공분야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명성을 떨쳤던 매사슈미트 전투기의 제조회사가 바로 벤츠의 계열회사인 MBB사였으며 현재도 MBB사는 에어버스의 동체를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토네이도 전투기 및 헬리콥터를 자체생산하고 있는 유럽의 대표적인 항공회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쓰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자랑이던 제로센 (영전) 전투기를 생산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도 일본의 차세대전투기 (FSX)생산계획에 참여, 날개 부분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등 항공·전자기술력에 있어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사의 제휴는 그동안 보잉· 맥도널 더글러스 등 미국계 항공회사들이 텃세를 부리며 독식해오던 세계항공기 시장의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영기업 민영화>
한편 미쓰비시-벤츠의 제휴선언과 더불어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또 다른 이국기업간 연합은 지난 2월23일 발표된 르노사와 볼보사의 합작선언이다.
EC의 시장통합에 대비하고 일본산 자동차의 유럽시장 공격에 대한 대비책으로 89년부터 논의되어온 이 계획은 유럽연합으로 불리고 있다.
당초 단순한 기술협력수준에만 머무를 것 같던 르노와 볼보의 연합선언은 세계 자동차시장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23일 암스테르담에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르노는 90년 초에 회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시킨 다음1백40억 프랑을 투입해 볼보의 모기업 AB볼보의 주식 10%, 볼보 자동차사(볼보의 소형차 생산회사) 의 주식 25%, 볼보 트럭사 (볼보의대형차 생산회사)의 주식 45%를 매입하고 볼보는 르노사의 주식2O∼25%, 르노 자회사인 RVI사의 주식 45%를 매입하게 된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 계획이 금년 중에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관련업무추진을 위한 전담위원회가 매월 1회 개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와 스웨덴에서 각각 자동차 생산에 관한 한 제1위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르노와 볼보가 합칠 경우 르노·볼보의 생산능력은 미국의 GM· 포드, 일본의 도요타에 이어 세계 4위 규모로 확장되며 특히 트럭·버스 등 산업용차량 분야에서는 세계최대의 업체로 등장하게 된다.
한편 양사의 사장들은 르누-볼보의 합작을 동맹이라고 부르면서도 각 회사가 현재의 상표와 경영의 독자성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양사의 합작으로 앞으로 나올 자동차가 르노-볼보를 적당히 섞어놓은 엉뚱한 제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비자들의 우려를 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르누-볼보의 합작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이들의 결합이 자동차 시장의 재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정부가 이번의 합작계획을 승인함으로써 지금까지 추진해오던 혼합경제정책에 상당한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고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즉 종전에 국영기업(Re-gie) 형태로 운영되어 오던 르노사를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고 스웨덴의 자본 참여를 허용한 것은 앞으로 다른 국영기업들의 민영화 및 외국자본의 참여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신호탄이라고 보고 있다.

<반도체 미·일 연합>
즉 르노사의 경우를 참작해볼 때 전자분야의 톰슨사나 우주·항공분야의 아에로스파티알사, 화학분야의 롱프랑사 등도 조만간 이와 비슷한 방식의 민영화, 이국기업과의 합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의 이와 같은 합작·민영화 허용방침은 92년 말 통합을 앞두고 있는 유럽경제지도의 재편을 위한 경쟁력 제고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우리 기업에도 시사하는바가 크다고 하겠다.
현재 세계기업들은 동구의 개방, EC통합, 첨단기술의 획기적인 발전 등 격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제화· 합리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보고 과거의 경쟁사와의 제휴도 불사하고 있다.
반도체분야에선 이미 미국 AT&T사와 일본 NEC사의 생산협력선언이 있었으며 AT&T사와 미쓰비시, 인텔사와 NMB사 등도 협력생산을 선언하는 등 적극적인 이국기업연합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우리기업들도 이러한 국제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불필요한 부문에서의 경쟁을 자제, 협력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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