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 딱 한가지 길/이종대(논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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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90년대를 열어가는 첫봄치고는 무척 살벌하고 긴장된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위기론과 파국에의 경고가 난무하는 가운데 서울의 여의도·울산·마산·창원이 거의 동시에 파업·시위·공권력투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때마침 부처님 오신날을 기리는 연등행렬의 축복과 평화는 오히려 분규와 투쟁의 광경을 한층 살풍경하게 만드는 대비효과를 자아내기도 했다.
5공 이전부터의 오랜 노동운동억압의 뒤끝에 불가피하게 터져나오는 격렬한 노사분규라고 일단은 치부하면서도 분규폭발의 4년째인 금년에도 그 과격양상이 그대로 이어짐으로써 산업계는 물론 국민전체로 불안이 번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대구시경 습격,청년들의 대전 민자당지구당대회장과 파출소습격까지 겹쳐 불안은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위기감이 고조될 때마다 부질없이 허둥대기 보다는 이제야말로 근본적인 치유책을 철저하게 따져봐야 할때라는 생각이 든다. 사태가 위중해 보일수록 오히려 냉정해져야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기가 쉬워지는 법이다.
단도직입으로 말해,부정하게 많은 것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절반정도라도 내놓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평화로운 방법으로 사회적 비용을 극소화하면서 가장 빠른 시일내에 현재와 미래의 혼돈을 해소하는 작업은 그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남이 손가락질하지 않아도 부정한 축재자는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정당하게 중산층에서 상향이동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이 그 속에 숨어있기가 과거보다 훨씬 편해지기는 했겠지만 가족이나 친지 가까운 친구들은 그것을 대충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부동산투기로 제법 큰 돈을 모았다면 그로인해 막대한 손해를 본 가난한 친구나 친척,심지어는 친형제의 마음 속을 한번쯤은 헤아려 보아야 한다.
그들의 뛰어난 두뇌회전이 끊임없이 강도를 높여가는 투기억제책보다 항상 한수 위에 있는 한,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정직성이 자리잡지 않는 한,우리 사회의 혼란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옳고 그름보다 이해를 행동의 규범으로 삼는 작태는 비단 경제활동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같은 부정직한 행태는 오히려 정치무대에서 더 극성스러웠다.
대통령선거·국회의원선거에서 후보들이 남발한 각종 사전적 또는 사후적 허언들은 당선을 위해 수단방법의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는 행위의 극치에 해당하면서도 정작 당사자들은 물론 국민들조차 예삿일로 생각하게끔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부당한 선거자금의 수수,선거운동의 위법·탈법과 아울러 후보자들의 부정직성은 사회전체의 부정직을 낳는 「흐린 윗물」이 되게 마련이다.
현재 전국에 널려 있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대처하는 응급조치가 공권력행사라면,근치를 위한 처방은 정직한 사회의 건설이어야 한다. 이의 실천과정은 먼저 위약과 허언의 장본인들이 그들의 공약을 믿었던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친구간의 사사로운 약속을 어긴 경우에도 받드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워오지 않았던가.
정치활동과 경제적 이익추구행위에 있어 부정직은 감히 상상조차 할수 없는 죄악이라는 생각이 사회적 통념으로 확립되면 정부의 공권력행사와 법의 집행은 지금과는 크게 다른 권위를 되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설령 이러한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지기 전이라해서 현재와 같은 불법·폭력적 방법의 노동쟁의가 방치되어도 좋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힘겨루기로 끝장을 보자는 식의 노동쟁의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선거운동이나 경제적 이익추구활동과 그 원리에 있어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극한투쟁과 극단적 사고로 특징지워지는 과도기적 노사분규양상은 가급적 빨리 정상궤도로 돌아가야 한다.
혼란의 과도기를 단축시켜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경제의 침체를 빨리 벗어나야 한다거나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나갸야 한다는 필요성은 이미 여러차례 지적되어 왔지만 90년대의 역사적 과제는 이보다는 훨씬 더 높은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과도기적 혼란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과도기적 혼란의 국가적 기회비용과 그 혼란을 통해 얻을 과실을 저울질 해보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90년대의 국제질서는 우리의 지상과제인 통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일찍이 없었던 호조건을 제공해줄 것이 확실하며 우리는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미 독일은 주변정세의 변화를 한편으로 활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통일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면서 통일에의 길을 능동적으로 개척해나가고 있다.
통일노력은 북방정책 추진에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 민족의 응집력,서독의 튼튼한 민주주의와 막강한 경제력이 통일과업의 견실한 추진력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형식과 내실의 양면에서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경제력을 대폭 강화하지 않는 한 통일의 추진력도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일을 향한 우리내부의 역량강화를 위해서도 정직한 사회의 건설과 이를 통한 우리내부의 응집력 배양은 필수불가결한 준비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준비작업을 완수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며 따라서 과도기적 혼란은 하루빨리 결말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북방정책만이 통일노력의 전부가 아님을 인정한다면,오늘날과 같은 과격한 노사분규와 이로인한 혼란의 장기화는 진정한 통일노력의 지연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비상임논설위원·기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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